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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수의 음악산책]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2018-04-05기사 편집 2018-04-05 19: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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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가족들과 근사한 외식을 하기 위해 분위기 좋고 가격도 조금은 부담이 될 수준의 레스토랑에 가면, 매우 긴 영어나 생소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프랑스어 또는 이탈리아어로 적힌 메뉴를 곧잘 접하게 된다. 메뉴의 음식을 고르고 먹은 후에 오는 어깨가 으쓱해질 것 같은 뿌듯함과 나의 지위에 대한 자부심마저 생길 때가 있다. 이런 사소한 메뉴도 격과 품위를 느끼게 해주는데 예술가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만우절에 태어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합창 교향곡 '종' Op.35는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en Poe)의 시 종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교향시이다. 흔히 독서를 많이 한 박식한 지식인이라 하면 러시아의 문학이나 시쯤은 통달했을 거라고 생각 할 만큼 러시아 문학이 지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데, 라흐마니노프는 왜 자신에게 더 친숙한 조국 러시아의 문호 푸슈킨이나 체호프를 마다하고 굳이 바다 건너 먼 나라 미국의 작가 포의 작품을 원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라흐마니노프에게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점은 아니란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와 활동했던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는 이와는 반대로 푸슈킨, 릴케와 같은 러시아와 유럽의 작가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가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뿐 아니라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임에도 불구하고 드뷔시와 라벨은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에 매혹되어 동양의 소리, 동양의 악기를 그들의 음악용어의 주된 소재로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발전시켰다. 드뷔시의 작품 '판화'에서 느낄 수 있는 동양의 음색과 정서는 20세기 초 서양음악의 가장 독특하면서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글로벌한 시대에는 예술과 문화를 교류와 교감을 통해 인류가 함께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아니지만 한 때 동양에서는 미국의 리바이스 청바지가 귀하고 하이 패션을 상징하는 것이었던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인도의 패션을 모방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그 바탕에 깔린 이유는 남의 떡이 더 크고 좋아 보이는 인간의 유치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심리 때문 아닐까.

라흐마니노프의 종은 종소리를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인생에 비유해 묘사하고 있다. 그가 그리고자 한 '탄생', '결혼', '죽음', '심판'과 같은 무거운 주제는 희망과 꿈의 나라인 미국 보다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와 암울함이 드리운 사회주의의 나라 러시아 작가들에게서 더 적절히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 자체가 미지의 신세계를 동경하고 열망하는 과정이며 예술과 문화는 이러한 염원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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