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살이 하게 되면 민감해지거나 관심을 갖게 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선거이다.

도시인으로 살 때는 선거일이 휴일이라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살았었다. 출마자들의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고 그냥 정치꾼들의 시끄러운 행사쯤으로 치부해버렸었다. 출마자들의 얼굴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투표를 하러 가지 않은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마 지금도 지방 소도시의 어느 시민을 붙잡고 지역의 시의원으로 출마한 사람에 대해 물어보면 이름조차 아는 이가 드물 것이다. 도시의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선거란 `하루 쉬는 날`에 불과할 것이다. 도시인들에게 `유권자의 권리`를 강조한다면 종교 행위를 하러 다니는 종교인 무리를 만난 것처럼 귀찮아 할 것이다.

우리가 시골로 귀촌했던 첫해가 공교롭게도 지방 선거가 있던 해였다. 동네 누군가는 선거법에 걸려서 벌금을 얼마를 냈다는 둥, 군의원으로 출마한 누군가는 반드시 찍어줘야 한다는 둥의 말들이 시골 마을에 난무했었다. 그 속에서 나는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선거의 치열한 속내를 처음으로 보았다. 이런 선거에 대한 관심이 시골 마을의 투표율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바로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기초의원 후보 물망에 오르고 면 단위 행사장에서 전부터 아는 사이처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친근감을 표시 하던 어떤 이가 군 의원 신분이라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정치인들이 생활 현장에 다니며 일일이 아는 척을 하는 것을 선거철 외에는 도시에서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골 마을의 선거는 생활 밀착형이기 때문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방 선거가 다가오면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꽃의 주제가 선거였으며 마을 회관에 모여서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는 촌로들도 선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펼치는데 놀랐다. 더 놀라운 사실은 투표하는 날이면 하던 일을 멈추고 꽃단장을 하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선거관리 위원회의 진부한 카피인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가 시골 마을에서는 현실적으로 행사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사는 곳인 부여군 선관위 집계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면 단위 마을의 오전 투표율이 50 %가 넘는 곳이 많고 마감 시간까지 투표율은 70%를 훌쩍 넘는다. 이런 나의 한 표가 끼치는 파워를 바로 체감하는 곳이 시골마을이다. 때문에 시골 사람으로 살게 되면 선거의 열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시골 마을의 선거는 전쟁이며 축제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마을 사람들끼리 지지하는 후보자들을 따라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져서 미묘한 심리전, 말의 각축전 등으로 컴퓨터 게임 속처럼 변한다. 장날마다 펼쳐지는 후보들의 인사 세례와 떠들썩한 유세전으로 시골 장터가 모처럼 생기가 돌고 활기차게 돌아간다. 어느 축제 현장이 이처럼 생동감 있고 전쟁터처럼 치열할 것인가.

선거를 잘 이해하고 잘 치러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된다고 우리는 배웠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실망과 체념이 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나는 사례를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봐 왔다.

최근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정치인들의 행태와 전 대통령들의 행보에 그들에게 한 표를 행사한 지난 선거를 후회한다. 우리는 굳이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잃었다. 우리들의 투표가 앞으로도 계속 실패하게 될 것 같아 두렵다.

그래도 우리는 선거를 지켜봐야 하고 투표를 해야 한다.

그 이유를 알고 싶을 땐 시골 마을 회관을 찾아가 보라. 거기에는 이렇게 말하는 촌로들이 있을 것이다.

"투표를 안 하면 쓰나. 투표 하러 안 가고, 선거 하는데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께 정치가 이 모냥인겨. 지켜보는 눈들이 많아야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것들이 허튼 짓을 안 하지. 그래서 투표하는 날은 꼭 투표하러 가야 한다니께"

선거철 시골 마을 회관에는 조금은 어설프고 좀 빠지는 모양새이지만 선거를 대하는 태도와 유권자의 권리에 대해서만큼은 투철하고 엄숙한 이런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글은 충남선관위의 0613투표참여 릴레이 기고문입니다. 오창경 해동백제 영농조합 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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