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독 지역을 관통하는 와인도로(D2)를 따라 오르내리다 뽀이약 남쪽 지역을 지나면 1등급 샤또 라뚜르(Latour) 건너편에 르네상스 양식의 멋진 샤또를 만나게 되는데, 샤또 피숑-롱그빌 바롱(Pichon-Longueville Baron)입니다. 피숑 바롱은 원래 샤또 피숑 롱그빌 꽁떼스 드 라랑드(Chateau Pichon Comtesse de Lalande)와 하나의 와이너리였다가, 1694년 부인의 지참금으로 출발된 샤또 피숑 롱그빌 설립자 자크 드 피숑-롱그빌(Jacques de Pichon-Longueville, 보르도 의회의 첫 의장)의 손자인 조셉(Joseph) 피숑-롱그빌 남작이 1849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아들들에게는 피숑 바롱을, 딸들에게는 피숑 꽁떼스(라랑드)로 나눠물려주어 두 개의 와이너리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1855년 메독와인 등급 지정시, 이 두 샤또는 모두 2등급으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뒀고, 같은 2등급이었던 무똥 로칠드가 1973년 1등급으로 승격되면서 뽀이악의 유이한 2등급 와이너리가 됐습니다. 현재 피숑-롱그빌 가문과 상관없는 기업들의 소유가 되긴 했지만, `피숑 남매`란 애칭으로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너무 길어 부르기 어려운 샤또 이름들은 각각 `피숑 바롱(남작)`과 `피숑 꽁떼스(백작부인)`의 약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메를로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피숑 꽁떼스가 피숑 바롱보다 더 여성적입니다.

피숑 바롱은 1933년 부떼이에(Bouteiller) 가문에 팔려 1960~70년대 침체기를 겪다가, 1987년 보험사 악사(AXA)의 자회사 악사 밀레짐(AXA Millesimes)에 매입되어, 포도원과 양조 설비의 대대적인 개선 및 지난 칼럼에서 소개드렸던 린치바쥬의 소유주 장미셀 까즈(Jean-Michel Cazes)의 경영자 영입으로 예전의 명성을 회복했습니다. 2008년에는 샤또 앞에 위치한 지하 숙성고 위에 투명유리로 분리된 사각형의 인공 연못을 만들어 아름다운 샤또의 풍광이 연못에 그대로 투영되게 했습니다. 숙성고에는 연못을 통과한 햇볕이 자연스러운 채광 역할을 하더군요.

와인 제조 시설 및 장비 현대화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등급 와이너리와 마찬가지로 포도는 100% 손으로 수확을 하지만, 1차 숙성 장치는 목재로 만들어진 장치는 하나도 없이 모두 깔끔한 스테인리스 장치였고, 사람들이 일일이 하던 포도 선별작업을 광학분류 장비(Delta Vistalys)를 사용하여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한다고 합니다. 장비 제조사(Bucher Vaslin MS) 국적인 스위스의 정밀기계 산업의 위력을 와인산업에서도 확인했습니다.

시음 와인으로 샤또 피숑 바롱, 세컨 와인인 뚜렐 드 롱그빌(Tourelles de Longueville), 샤또 피브랑(Pibran) 각각 2011년 빈티지가 제공되었습니다. 뽀이약 와인 생산량에서 등급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가깝다고 들었습니다. 시중에서 비등급 뽀이약 와인을 접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지요. 10여년 전에 까르푸가 철수한 매장에서 샤또 피브랑을 우연히 발견해서 맛있게 음미했었기에 반가웠습니다. 악사 밀레짐에서 피숑 바롱과 함께 인수해서 같은 와인 메이킹 팀에 의해 동일한 수준으로 피브랑 와인이 제조된다고 합니다.

피숑 바롱은 개성이 뚜렷하고 강한 풍미를 지닌 열정적인 와인으로 좋은 빈티지의 와인은 20~30년 보관할 수 있습니다. 동급의 다른 와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하기에, 1995년생인 아들을 위해 탄생빈을 구입해 놓은 와인 중의 하나입니다. 얼마전 할인매장 행사에서 2014 빈티지를 클래식와인 정모 시음용으로 사두었습니다. 5월이 될 것 같은데, 시간 되시면 오셔서 다양한 맛들이 교묘하게 얽혀서 복합적인 여운을 즐길 수 있는 피숑 바롱을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신성식 ETRI 미래전략연구소 산업전략연구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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