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이면 나고야의정서가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일반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의정서는 국제적으로 이미 발효된 국제협약 중 하나이며, 국내적으로도 올해 8월이면 과태료나 벌칙 등이 적용되는 법적인 효력이 작동되는 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의정서에 따르면, 외국의 생물을 수입할 경우 해당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이 생물을 활용해 얻은 이익을 수입국에 일정부분 나누어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외국여행 중 무심코 채취한 생물(동물, 식물, 곤충, 미생물 등)을 해당국의 승인 없이 소지하면 출국 심사 과정에서 적발돼 공항에서 체포될 수 있다. 예전과 같이 허가 없이 몰래 가지고 나갈 경우 범법자 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를 이제는 생물해적(biopiracy)으로 간주하는 시대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외국의 생물을 법적인 허가나 비용을 지불하고 수입했다 하더라도 그 소유권이 온전히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해당 생물의 소유권이 아닌 이용권만을 가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쉽게 말하면 임대차계약을 통해 계약 기간내에서만 임차인이 사용할 권한을 잠시 가진 것과 같을 뿐이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생물의 소유권으로 인한 각종 분쟁들이 발생되고 있다. 왜냐하면, 생물(유전자원)은 의약품, 식품, 화장품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제품의 원료로 널리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들 원료의 대부분(약 67%)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라 유전자원 수입으로 추가 발생하는 로열티가 1조 5000억 원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다. 이는 나고야의정서가 작동될 경우 유전자원 수입국인 우리나라에 막대한 경제적 추가 피해가 발생됨을 의미한다. 이제는 우리도 외국의 유전자원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범법자가 되는 상황을 빗겨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최근 페루는 자국산 식물인 마카를 이용한 외국의 특허등록 사항을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마카(maca)는 고대로부터 민간에서 천연강장제로 널리 이용돼온 `페루의 인삼`으로 불리는 식물이다. 페루 안데스 고원의 후닌(Junin)호수가 원산지로 알려지는데, 형태는 우리나라 강화도의 순무와 비슷한 모양이다. 페루 자생식물인 마카가 성 기능 향상에 좋은 수퍼 푸드로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페루의 마카 재배 농민들은 커다란 수익을 얻어왔지만, 중국인들이 마카를 페루로부터 수입하지 않고 자국에서 직접 대량으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마카 시장의 판도가 바뀌게 됐다. 값싼 중국산 마카가 시장에 유입되자 페루산 마카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고, 마카 재배에 생계를 의지해온 페루 후닌 주의 주민들은 정부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페루 정부는 세계 유일의 반생물해적행위 TF팀(the world`s only biopiracy task force)`을 발족하고, 자국산 유전자원을 이용한 전 세계 특허를 조사, 감시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한국을 포함해 중국, 폴란드, 미국 등의 마카 관련 특허 현황을 조사했다고 알려진다.

또한 페루는, 자국 유전자원인 사카잉키 윌라밤바나(Plukenetia huayllabambana)의 이식 및 번식방법에 대한 특허를 중국 특허청에 출원한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사카잉키의 씨앗은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식물로 심장병, 관절염, 알츠하이머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루는 아마존 지역(Mendoza)의 고유 식물들을 정부의 허가 없이 무단 채집해 특허를 출원한 사례로 보고 추적했다. 현재, 위원회는 특허 출원자에게 공식 고소장을 발송하고, 특허 취소 절차를 추진하기 위한 문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자국의 유전자원의 무단 이용으로 추정되는 세계 특허를 대상으로 15건의 사례를 적발했는데 여기에 일본, 유럽과 더불어 한국이 포함됐다.

또 다른 국가인 에콰도르에서도 자국 유전자원에 대한 생물해적행위를 한 나라들을 적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16년 6월 29일 발간된 보고서에 따르면, 에콰도르는 자국의 유전자원에 대한 특허를 가장 많이 신청한 국가로 미국, 독일, 네덜란드, 호주 및 한국 등을 을 5대 생물해적행위국가로 지목했다. 고등교육과학기술혁신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자원 접근에 대한 정당한 승인절차 없이 자국의 유전자원을 이용한 연구결과를 특허출원했으며 이러한 특허의 무효화를 신청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쟁이 발생하는 나고야의정서 체제하에서는 유전자원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소유권은 해당 보유국가에 있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해당법률에 따라 승인을 받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유전자원을 수입했다 하더라도 그 소유권이 아닌 이용권만을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바야흐로 이제는 생물도 임대차계약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장영효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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