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개봉해 300만이 넘는 관객수를 기록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영화는 명진구청의 블랙리스트 민원인 나옥분 할머니를 등장시키며 시작된다. 옥분은 지난 20년간 명진구청에 8000건의 민원을 제기해 온 인물. 모두가 기피하는 그지만 9급 공무원 박민재만이 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한다. 하지만 이런 원리 원칙이 과연 현실에서도 통할까?

민원담당 공무원들 대다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막말과 폭행, 무단침입과 난동에 이르기까지 악성 민원들로 인해 공직사회는 지금, 악성 민원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시 흥덕구 한 주민센터 직원들은 악성 민원인이 수시로 찾아와 막말과 고성을 지르는 통해 신경쇠약을 호소하고 있지만, 마땅한 제재 방법이 없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시청 공무원들 역시 부동산 개발 및 사회보장제도 관련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인들로 연일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참다못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청주시지부가 20일 폭언과 인격 모독성 발언을 일삼는 악성 갑질 민원인에게 강력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법적 절차를 밟을수는 있지만, 시민을 고발한다며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고, 보복 우려로 공무원들이 취하 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동일한 고충을 겪는 해외 선진국들은 공공행정 영역의 악성 민원을 행정력 낭비 등 사회적 손실로 보고 별도 관리 기준과 대응 지침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영국은 고질 민원인에 대해 일정기간 동안 지방정부에 접촉할 수 있는 방법, 시간, 담당공무원 등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호주 역시 전화통화 1회 10분, 면담 최대 45분으로 상담 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본은 약 5000명의 행정상담위원이 지역 주민 고충을 듣고 행정기관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며 악성민원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억지와 생떼가 가능한건 관의 이미지를 고려해 되도록 조용히 처리하려 한다는걸 알고, 종국에는 들어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민이 왕이고 시민감동 행정도 중요하지만, 아닌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열린 행정이 더욱 요구되는 때다.

원세연 지방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세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