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면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이 떠오른다. 허생은 가난한 가정형편은 아랑곳 하지 않고 7년 동안 글만 읽던 서생인데 어느날 부인의 등쌀에 못 이겨 돈을 벌러 집을 나서게 된다. 허생은 요즘으로 치면 재벌과 같은 한양의 이름난 부자 변씨에게 1만냥을 빌어 장사를 시작한다. 당시 교통의 요지 안성으로 내려간 그는 대추, 밤, 감, 배 등 과일을 두 배의 값으로 모조리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갔다. 매점매석으로 큰 돈을 번 허생은 하릴없이 지내던 도둑떼에게 땅과 양식을 주고 빈 섬을 경작했다. 요즘으로 치면 농업벤처회사를 차린 셈이다. 여기서도 큰 성공을 거둬 100만냥을 벌게 된다.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은이 10만 냥이 남아 변씨에게 모두 돌려줬다.

어느날 허생의 비범함을 알게된 조정의 실력자가 그를 찾아와 벼슬길에 오르길 청했다. 허생은 나라를 부강하게 할 3가지 계책을 말하지만 실력자는 예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 고개를 젓고 만다. 허생은 허례허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고는 사라져 버린다.

매년 차례상 차리는 비용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 돈도 부담이지만 차례상을 차리는 과정에서 `명절증후군` 따위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가족간 갈등도 생긴다. 차례(茶禮)는 글자 그대로 차를 올리는 예다. 사전에도 매월 음력 초하루·보름, 조상의 생일, 명절 등에 간단히 지내는 제사로 돼 있다. 제사와 차례의 가장 큰 의미는 조상을 기억하고 가족간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니 좌포우혜(왼쪽에 포, 오른쪽에 식혜)니 하는 제례법은 이 같은 마음 뒤에 부차적으로 따라 생겼다. 굳이 대추, 밤, 배, 감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이들 과일은 단지 오래 보관할 수 있어 제수용품이 된 측면이 있다. 예법이 생길 당시 바나나가 있었다면 당연히 젯상에 올라갔을 터이다. 더구나 전류, 육전, 어전은 생략해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한다. 농경사회 대가족제가 핵가족화 한 만큼 전통적 의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차례상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제사가 조상을 기억하고 가장 좋은 음식을 차려 가족과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일종의 축제가 되길 바란다.

이용민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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