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食藥)이 동원(同原)`이라는 말은 `음식과 약물의 근원이 같다`는 말이다. 이 말은 식물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46억 년 지구의 역사 속에서 가까이는 1억 5000만 년 전 쥬라기공원으로 유명했던 중생대에 번성한 소나무, 은행나무 같은 겉씨식물로부터 공룡멸종 이후 포유류가 전성기인 신생대의 장미, 벼, 콩 등 속씨식물까지 그들만의 삶의 방식과 생존전략으로 식물들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이러한 식물들은 광합성 작용 등을 통해 만들어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기본적인 1차 대사산물과, 날카로운 가시 같은 물리적인 방어수단 외에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화학적 방어수단인 2차 대사산물을 통해 많은 동물과 인류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치료약물을 제공해 왔다. 흔히 식약동원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1차 대사산물에 가깝고, 강력한 약성을 지닌 질소화합물을 포함한 2차 대사산물은 거리가 좀 멀다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 300-400여 과(科-family) 25 만 여종(種-species)의 현화식물(flowering plant)을 보면 떡잎이 두 개인 식물중에서 가장 진화한 국화과 식물과, 떡잎이 하나인 식물 중 가장 진화한 난초과 식물이 각각 2만 여종 이상으로 종이 많으며, 그 다음으로는 벼과식물이 1만 여종 있다. 우리가 주식으로 하는 쌀, 보리, 밀, 율무, 옥수수 등이 속해 있는 벼 과는 다른 먹거리가 속한 콩 과나 장미 과 등의 식물보다 생태적으로 중요한 과이므로 가장 기본적으로 식약동원에 해당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김성현 춘하추동한의원 원장의 도움말로 벼과 식물 중 쌀, 보리, 밀이 한약재로 사용된 경우에 대해 알아본다.

◇ 멥쌀과 찹쌀= 인류에 의해 재배된 벼중 아시아종은 자포니카(일본종), 인디카(인도종-안남미)등으로 분류가 되는데 한국과 일본, 중국 북부에서 주로 소비가 되는 짧고 둥글고 굵은 형태의 자포니카종(세계 쌀생산량중 10% 정도)은 대략 1만 년 전 붉은 야생쌀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서 생겨났다. 또 쌀의 전분 성분중 아밀로즈는 퍽퍽한 식감을, 아밀로펙틴은 찰진 식감을 나타내는데 자포이카 종은 아밀로스 성분이 인디카 종에 비해 낮기 때문에 더 찰지며, 윤기가 더 난다. 찹쌀은 멥쌀에서 돌연변이 한 것으로 아밀로펙틴이 주를 이루고 있으므로 찰진 것이다.

한약 중에 멥쌀을 넣는 경우는 죽엽석고탕과 백호탕 등에서 볼 수 있는데 동의보감에서 `멥쌀은 늦벼쌀이 제일 좋은데 서리가 온 뒤 가을에 추수한 것이 좋다`라는 구절처럼 가을기운(金氣)을 잘 머금은 것으로 약재에 사용해야 한다. 멥쌀을 갱미(粳米)라고 부르는 것은 쌀알이 단단하다(硬)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동의보감에서 찹쌀은 산모가 유산의 위험이 있는 경우 태아를 잘 잡아주기 위해 안영탕(安榮湯)에 사용했고,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진 경우에 힘줄과 뼈를 이어주기 위해 나미고에 넣어 사용했다. 또 찹쌀은 멥쌀에 비해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비위(脾胃)가 약한 사람들에게 죽을 만들어 복용시켰다. 이외에도 창고에서 오래 묵은 쌀(陳倉米, 진창미)은 비화음(比和飮)이라는 처방에 넣어 음식냄새만 맡아도 구토 하는 증상에 응용했으며, 쌀뜨물은 해독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보리(大麥)= 보리의 싹을 내어 말린 뒤 살짝 볶은 약재를 맥아(麥芽)라고 하는데, 한의학에서는 소화제로 산사와 함께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보리 말린 것은 엿을 만드는 식혜의 재료가 되므로 엿기름이라고도 한다. 맥아는 젖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고 정체돼 부풀어 오르는 것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는데 약리학적으로 유즙분비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하는 것으로 에르고트화합물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고프로락틴혈증 환자가 생맥아탕을 내복하면 혈액중 프로락틴의 농도가 낮아지고 유즙분비가 뚜렷이 억제된다.

◇ 밀(小麥)

세계 3대 작물 중 하나인 밀은 연 평균 기온이 3.8도 정도이면서 건조해도 재배가 가능한데, 누들로드의 시발점인 중국 산서성은 연평균 강수량은 600㎜ 정도여서 재배하기에 적당하다.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대륙성 기후에서는 12-15%의 단백질 함량을 지닌 쫄깃한 경질밀(제빵용)이 생산되며, 기후가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은 해양성 기후에서는 8~11%의 단백질 함량을 지닌 연질밀(쿠키용)이 생산된다. 한의학에서는 `물에 뜨는 밀`인 밀쭉정이를 부소맥(浮小麥)이라 해 약재로 이용하는데 열을 없애주거나 자한(自汗),도한(盜汗) 등을 치료하는 황기탕, 모려산 등에 넣어 땀이 많은 체질에 응용한다. 박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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