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장 장영효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장 장영효
요즘처럼 우리나라 국민의 외국 여행이 빈번한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해외여행자수는 2016년 22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2005년 1000만 명을 돌파한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대규모 국민의 해외여행으로 나라의 여행수지 적자가 커지는 부담과 더불어 각종 사건사고도 부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중에서 뜻하지 않는 행위로 인해 졸지에 범법자로 전락해 기분 좋은 해외여행을 망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개인과 국가의 위신을 동시에 추락시키는 일이 된다. 일반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외국 법률과 이미 작동하고 있는 국제협정들도 그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현재 발효된 `나고야의정서`라는 협정도 그 범주에 들어있다.

이 의정서에 따르면 외국의 생물을 허가 없이 몰래 가지고 나갈 경우 생물해적으로 고발당해 체포될 수 있다. 즉 해외여행 중 채취한 생물(동물, 식물, 곤충, 미생물 등)을 외국의 승인 없이 소지하면 출국 심사 과정에서 적발돼 공항에서 체포될 수 있다. 기분 좋은 해외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 이런 행동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몇 년 전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 그 사례를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2012년 3월 11일, 스리랑카에서 외국인 6명이 동식물 표본을 담은 유리병을 소유하고 있다가 적발돼 당국에 체포됐다. 이들의 혐의는 스리랑카 영토 내에서 생물해적행위를 한 점이었다. 과거의 해적들과 같은 행동이며 생물을 불법으로 채취한 행위라는 것이다.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는 이렇다. 체포된 외국인들은 호주, 벨기에, 독일, 베네수엘라 등의 국적을 가진 6명으로 모두 `Exo Terra`라는 회사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소속된 회사는 천연 육상동물과 파충류 등을 인공 사육해 제품으로 판매하는 회사로서 제품이 될 만한 파충류 등의 수집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업을 위해 여러 나라에 파충류 수집을 목적으로 원정대를 파견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아프리카이며 최근에는 스리랑카에 원정대를 파견했다. 이 원정대는 스리랑카의 보호동물인 별거북(Star Toirtoise)의 DNA 표본뿐 아니라 토종 개구리와 카멜레온을 수집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스리랑카의 해당 관청인 야생동물보호청(Dept. Wildlife Conservation)에 어떠한 종류의 동의나 허가도 받은 바 없었다. 이로 인해 체포돼 구속됐으며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의 범법행위를 인정하고 43만 5000루피(한화 395만 원)의 벌금을 물고 석방될 수 있었다.

스리랑카의 법률은 해당 관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는 경우에는 스리랑카 국민들조차도 DNA표본은 물론 그런 동물들을 포획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따라서 스리랑카에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들에 대한 채취를 할 경우에는 먼저 해당 관청의 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신청서를 제출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비단 스리랑카 한 국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국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엄격한 체제다. 특히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중국,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일수록 이런 문제에 민감한 실정이다. 이들은 자국의 생물을 통해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는지를 먼저 고려한다. 외국인이 허가 없이 채취한 자국 소유의 생물에 대한 특허권을 획득하고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보상의 공유를 원하는 것이 나고야의정서 체제의 현실이다. 들뜬 마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을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 망치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 이런 행동은 대단히 주의해야 할 일이다. 장영효 한국생명공학연구원 ABS연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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