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수 피아니스트
조윤수 피아니스트
2011년 초연 때 보았던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며칠 전 같은 장소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시 관람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연말이면 연주되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나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처럼, 뮤지컬 `광화문 연가` 역시 해를 거듭하며 무대 위에 올리는 전통(tradition)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IT의 발달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단 한 개의 전화번호를 외우거나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급변하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기억 속에 다시 보고,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스쳐 지나는 유행(trend)이 아닌, 영원한 고전(classic)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휴대폰과 자동차를 보아도 해마다 스타일과 모양이 점점 더 개량되고 더 많은 기능으로 보완되면서 불과 얼마 전의 최신형은 머잖아 고개를 숙여야 하는 구닥다리가 된다. 미인 대회나 연예인들의 시상식 등을 보면 첨단의 패션과 문화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강렬한 화장과 화려한 드레스가 유행이던 시대의 베스트 드레서는 자연스러운 룩과 미니멀한 의상이 유행인 시대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스타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20년대의 자동차와 미래의 자동차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고전의 의미를 한 눈에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시대에 따른 어떠한 변형(transformation)에서도 100년이 된 과거의 원형을 떠올릴 수 있음은 이문세의 원곡 `붉은 노을`의 감동이 아이돌 그룹 빅뱅의 리메이크 작이나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주요 주제곡에서도 그대로 전달되는 것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연극에서부터 다양한 시대를 거쳐 새롭게 탄생한 발레나 영화까지, 한 때 잠시 스쳐 간 유행이 아닌 몇 백 년의 세월을 초월할 수 있는 고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가 아닐까.

유행을 지나 전통과 고전을 좌우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감이다. 지나가는 순간의 감각적인 것보다는 인간의 모든 감정들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감대를 갖춘 예술 작품, 생활용품, 또는 과학과 기술은 사라지지 않고 시대에 맞게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전통처럼 유지되고 소중히 간직된다. 20세기 초 잠시 유행했던 추상 예술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공감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가 동시에 지켜보았던 베를린 벽이 무너지던 때,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했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중 `환의의 송가`는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공감할 수 있었던 가슴 벅차고 잊지 못 할 역사적 순간이었다.

다시 보고 싶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 추억의 발자취가 되어 줄 수 있는 작품들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불멸의 전통이 되는 고전이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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