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날 때 마음이 설레는 것은 미지의 것에 대한 기대감과 늘 해왔던 일에서의 해방감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사전에 여행지의 토속음식, 맛집을 미리 체크해 두는 일 만으로도 기분을 들뜨게 한다. 낯선 곳이니 안전하고 편안히 잠잘 곳을 예약하는 일도 빠트려서는 안 된다. 가봐야 할 만한 장소를 미리 포스팅 한 블로그나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정보의 사전숙지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여행의 목적이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여행지에서 체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각별히 신경을 쓸 것이다. 어르신과 동행하는 여행이라면 시설이 잘 갖추어진 온천욕장, 산림욕장, 추억 여행지들을 체크해둬야 한다. 하지만 여행의 목적이 일반적이지 않고 또 다른 목적성을 띠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온천욕도 그 한 예일 수 있다.

온천수가 분출하고 그 효능이 알려지자 태조 이성계를 비롯하여 조선의 역대 왕들과 그 가족들은 자주 온양으로 행행(行幸)했다. 한양에서 가마타고 나흘 길이었다고는 하나 세계사적으로 봐도 왕들은 여행을 마음 편히 즐기지는 못했다. 빈 왕궁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신하들의 충동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왕들은 질병치료를 위해 수시로 온양행궁을 찾았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도 온양에 욕실을 갖춘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여행의 목적은 고단한 심신을 달래고 질병 치료에 있었다. 그런가하면 `연금술사`에 산티아고처럼 보물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있다.

산티아고는 신학교에서 라틴어, 스페인어, 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공부만으론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산티아고는 세상공부를 위해 양치기가 되었다. 여섯 마리의 양을 치며 세상을 떠돌았다. 산티아고는 어느 현인에게서 이집트 피라미드에 얽힌 보물의 신화를 듣게 되었다. 그 보물의 신화는 자연물을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연금술의 비법에 관한 것이었다. 산티아고는 양들을 팔고 신화를 찾아 이집트를 향해 길을 떠났다. 두려움도 일었지만 미지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의욕이 그를 선도했다. 도중에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대부분 일이 잘 풀렸고 마음의 평화도 얻을 수 있었다. 산티아고는 때로는 그 자리에 안주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보물의 신화를 찾는 여행길에 다시 올랐다. 자신의 꿈에 다가갈수록 어려움이 점점 더 커진다는 사실도 느꼈다. 사랑하게 된 파티마와의 만남이 원인이었다. 파티마는 산티아고와 함께 있을 것을 요구했다. 그 순간 그녀와 함께 살면서 양치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랑도 보물의 신화를 찾아 떠나가는 산티아고의 여행을 막지는 못했다. 사막은 그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사막의 모래 알갱이 한 알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천지창조의 모든 경이를 느끼게 하였다. 그 순간 연금술은 절대적인 영적 세계를 물질 세계와 맞닿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산티아고는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무화과 나무가 서있는 버려진 낡은 교회에 들었다. 그리고 그 무화과나무 밑에서 자신이 찾고자 했던 그 보물의 신화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가 찾고자 했던 보물은 먼 곳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여행 중에는 세상견문을 넓히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많은데, 그 원조는 중국 열하를 다녀온 연암 박지원이다. 연암은 비공식 수행으로 청나라 건륭황제의 칠순 잔치에 축하사절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6개월간의 대장정을 『열하일기』에 남겼다. 한양에서 의주 길을 지나 수많은 강물을 건넜고, 광대한 요동벌판을 바라보며 벅찬 마음에 호곡(號哭)도 하였다. 연암은 북경을 거쳐 열하까지 다녀오는 동안 도중에서 많은 중국인들과 필담으로 중국정세에 대한 논쟁도 벌였고, 그들의 일상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혔다. 때로는 붓을 들어 자신의 박식함을 보라며 호기도 부렸고, 새롭고 신비한 중국을 보는 즐거움에 매료되기도 하였다. 북경의 27만 칸의 유리창에서 만난 도서와 물건들을 보고는 부러움의 고독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느꼈다. 그곳엔 세상의 모든 보화가 쌓여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연암의 보따리에는 중국인들과 필담한 내용의 `열하일기` 초고가 들어 있었다. 230여 년 전 연암의 중국 여행은 19세기에 꽃피운 `이용후생(利用厚生), 쓰는 것을 편리하게 하며 삶을 두텁게 하다`의 실학정신의 구현에 크게 기여했다. 실학정신은 여행으로 얻게 된 연금술의 결정체였다.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행동은 여행이라고 한다. 무술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따뜻한 온천욕장을 찾아 심신의 피로도 풀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람 한다. 맹주완 아산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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