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어깨순 집어준 목화에서

마디마디 목화꽃이 피어나면

달콤한 목화다래 몰래 따서 먹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

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렸다

- 겨울에 손 꽁꽁 얼어도 좋으니?

서리 내리는 가을이 성큼 오면

다래가 터지며 목화송이가 열리고

목화송이 따다가 씨아에 넣어 앗으면

하얀 목화솜이 소복소복 쌓인다

솜 활끈 튕기며 피어나는 솜으로

고치를 빚어 물레로 실을 잣는다

뱅그르르 도는 물렛살을 만지려다가

어머니한테 나는 늘 혼났다

그럴 때면 누나가 눈을 흘겼다

- 손 다쳐서 아야 해도 좋으니?

까치설날 아침에 잣눈이 내리면

우스꽝스런 눈사람 만들어 세우고

까치설빔 다 적시며 눈싸움한다

동무들은 시린 손을 호호 불지만

내 손은 눈곱만큼도 안 시리다

우리 집에는 2남 3녀. 위로는 형과 누나가 둘. 벙어리장갑 속 다섯 손가락처럼 어머니 사랑 안에 시끌벅적 자랐다. 퍽퍽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목화솜 따던 추억 떠올린다. 할머니의 물레는 언제나 쉬지 않고 돌아갔지. 논둑 밭둑에도 정자나무와 언덕이나 비탈에도 하얀 타래 솜 푸짐하게 펼쳐놓았지. 멀리 새떼도 마을로 내려와 먹을 것 찾아 짚더미를 뒤지곤 했다. 초가지붕 위로는 연기가 꾸물거리고 먼 마을에 이따금 개짓는 소리 들리곤 했다. 벙어리장갑은 그래도 붉은 색이 어울렸지. 흰색은 눈밭에 떨어지면 보이지 않으니까. 자꾸만 확인해야 하니까. 흰 눈과 대조된 강렬한 색의 조화. 그게 사랑이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 벙어리장갑엔 어머니 꾸중과 누나의 눈흘김이 들어 있는 거다. 그건 하얀 목화송이 아직도 피고 있는 것. 지금 창밖에 내리는 송이눈은 하얀 목화꽃 피워내는 중. 눈송이가 호호 불며 아주 큰 벙어리장갑으로 언 땅을 품어주는 것. 그 안에서 올해 다 피우지 못한 씀바귀 싹도 포근히 잠들어 있고. 흰꽃 쏟아낼 찔레순도 콜콜 잠을 자고. 때가 되어 내가 그 찔레순을 꺾으면 어머니는 또 "- 찔레 가시에 손가락 찔려도 좋으니?" 하시겠고. 누나는 또 한껏 눈을 흘기겠지.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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