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낡은 잡지에서 읽었는데 좀처럼 잊히지 않고 가끔씩 생각나는 짧은 이야기 한토막이 있다. 간략히 옮기면 이런 이야기다.

아주 욕심이 많고 자기밖에 모르는 남자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 그런데 그를 지키는 수호신이 그의 처지를 가엽게 여겨 어떻게든 그를 구하려고, 평생 살아오면서 한번이라도 착한 일을 한 게 있는지 그의 일생을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찾아낸 단 한 번의 선행은, 파밭에서 파를 캐는데 지나가는 걸인이 동냥을 구하자 장난처럼 파 한 뿌리를 던져준 일이 있더라는 것이다. 수호신은 염라대왕 앞에 가서 그 일을 고하며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운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선처해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의 말씀이 `그렇다면 그 파 한 뿌리로 그를 끌어올려라. 그를 무사히 끌어올리면 그의 죄를 사해주겠다` 는 것이다. 수호신은 그 것을 가지고 남자에게 가서 지옥 안으로 내려주며 말했다. 자, 이것을 잡고 올라오시오. 당신이 평생 동안 유일하게 한 선행이오. 남자가 파 한 뿌리에 매달렸다. 남자의 몸이 서서히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 있던 지옥의 귀신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나도 같이 갑시다!` 남자가 그들을 떨구어 내려고 마구 발버둥 쳤다. 수호신이 애타게 외쳤다. 제발 그들을 뿌리치지 마시오! 하지만 남자의 계산으로 파 한 뿌리는 그들을 모두 끌어올리기에 너무 약하다. 그것은 자기 것이니 자기만 올라가는 게 옳다. 남자의 마음은 온통 악머구리같이 달려드는 귀신들을 떨구어내는데 빼앗겨버렸다. 그 순간, 파 줄기는 툭 끊어졌다.

파 한줄기의 끊어짐. 단 한 번의 선행과 수호신의 노력을 헛되이 망쳐버린 것은 무엇일까? 어차피 그를 끌어올리기에 그의 선행은 너무 약했던 걸까. 같이 고통을 겪었던 이들을 외면하고 혼자만 살겠다고 발버둥 쳤던 이기심이 문제일까. 아니면 그 순간(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에 파 한 줄기, 그것이 자기 것이라는 집착 때문에 그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적을 잊었던 게 원인은 아닐까. 아마 보는 시각에 따라 그중 어떤 하나라거나 혹은 전부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또 누군가는 전혀 다른 이유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짧고 단순한 이야기에 담긴 함축적인 의미가 내 의식 속에서 오랫동안 어떤 지표가 되어왔다는 사실이 재미있어 한번쯤 이야깃거리로 삼고 싶었다. 이예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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