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융합에너지 개발과 같이 미래 지향적 신기술의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융합연구가 효과적일뿐만 아니라 그 필요성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핵융합에너지와 관련된 초기 연구 단계에서는 소수의 닫혀있는 연구 그룹에 의해서도 가능했다. 하지만 상용화를 위한 연구 개발 단계에서는 다학제적 융합연구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융합연구의 수행 방법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한다. 통신이 발달되지 않은 시절에는 관련 연구자들이 공간적으로 한자리에 모여서 연구를 수행해야 했다. 인터넷이 발달 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터넷에 의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물리적 공간의 제약이 없이 융합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에 의한 초연결성에 기반을 두고 진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융합연구는 어떤 방식으로 수행 될 수 있을까.

기존의 융합연구가 인터넷 연결성에 기반을 두고 사람-사람 간의 관계로 이루어졌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융합연구는 사람-사람, 사람-사물, 사물-사물 간의 초연결성을 기반으로 사람과 인공지능의 협업이 될 것이다. 이미 의료진단 분야에서는 인공지능 IBM 왓슨과 의사들과의 협업에 의한 암진단 성공률이 의사들로만 이루어진 협업집단 보다 매우 높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앞으로 IBM 왓슨과 같이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양성될 것이다. 사람의 기보로 학습해 양성된 `알파고 리` 및 `알파고 마스터` 그리고 사람의 기보의 도움 없이 성장한 `알파고 제로`로 이어지는 바둑 분야의 `인공지능 전문가`가 양성된 사례는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전문가가 양성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렇게 양성된 `인공지능 전문가`는 `사람 전문가`들이 미쳐 생각 하지 못했던 또는 오래된 난제로 남아 있던 과학기술 문제를 각 분야의 `사람 전문가`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융합적 협업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모습으로 가시화하고 인격화 했을 때 친근감을 느끼게 되고 협업의 시너지도 생기게 된다. 현실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성은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해 가시화될 수 있다. 즉 가상공간에 만들어진 가상 사무실에 자신의 아바타로 출근하고 가상 회의실에 모여 다른 연구자들의 아바타를 통해 실시간으로 마치 현실에서 대면하고 소통을 하는 것처럼 융합연구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기업인 IBM은 린드랩에서 개발한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라고 하는 인터넷 가상세계에 가상 건물을 짓고 가상 회의실을 만들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직원들이 그들의 아바타로 한자리에 모여 세미나 발표 및 토론 등을 통해 현실 공간의 구애 없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물리적 현실에서는 `인공지능 전문가`의 형체는 사용 목적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 로봇도 아직은 투박한 외모 때문에 인간적 친근감보다는 기계장치로 인식된다. 반면에 가상현실 속에서 활동하는 아바타는 사람에 의한 아바타인지 인공지능에 의한 아바타인지 그래픽 외형뿐만 아니라 인격적 정체성조차도 구별할 수 없다. 2017년 1월 유럽연합 의회는 인공지능 로봇의 법적 지위를 전자인간(Electric Personhood)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따라서 4차 산업 혁명시대의 융합연구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은 더 이상 인간의 연구개발을 보조하기 위한 기계장치 도구가 아니라 같이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동료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 전문가`와의 협업 효과는 핵융합 연구처럼 많은 난제를 지닌 분야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기대한다. 핵융합에너지는 개발 성공 후 파급효과가 무한히 큰 만큼 개발 과정에서는 많은 난제를 품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러한 난제를 풀기 위해 `사람 전문가`들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급기야 핵융합 7대 강대국들은 ITER라고 하는 국제핵융합실험로를 공동으로 개발하는 국제적 거대 융합연구를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람 간의 융합연구에 의존되고 있어 난제 해결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가까운 미래에 `사람 전문가`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진정한 융합연구팀으로 활동함으로써 걷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유석재 국가핵융합연구소 선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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