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카 백악관 선임 고문이 일본을 찾은 지난 2일 열도는 달아 올랐다. 언론은 이방카를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부터 생중계 수준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아베 총리는 이방카를 직접 안내하고, 그녀가 주도하는 여성기업가 지원 기금으로 5000만 달러를(약 558억 원) 내겠다고 흔쾌히 약속했다. 도쿄 도심에선 평화를 외치는 관제 시위가 벌어졌다. 방일(訪日)을 앞둔 이방카의 아버지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한 구애다. 국익을 위해선 시나리오 따윈 필요 없다는 듯한 짬짜미를 현장에서 우연히 지켜봤다.

‘황제’로 집권 2기를 맞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 전략은 과거와 차원이 달라졌다. 시 주석은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을 ‘황제급’으로 예우함으로서 ‘자신을 믿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중국은 앞서 ‘한·중 관계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내놓았다. 트럼프의 한·중·일 방문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등이 임박한 상황에서 사드를 빌미로 한 ‘금한령(禁韓令)’을 풀어줬다. 하지만 사드 보복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한국에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동북아를 무대로 총성 없이 펼쳐진 11월 외교전에서 한국은 어땠을까. 외형적인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코리아 패싱(한국 건너뛰기)’를 불식하며 굳건한 동맹 재확인이라는 성과를 냈다. 이어진 APEC과 아세안+3 정상회의, EAS(동아시아정상회의)에선 최대 현안인 북핵 해법과 관련, 정상들과 공감대를 공고히 했다. 나아가 주변 4강 중심이던 외교 영역을 아세안으로 다변화한 신(新)남방정책을 제시해 호평을 받았다.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적지 않다. 당장 포스트 사드가 관건이다. 한·중 관계가 외형상 봉합된 걸로 보이지만 정상화됐다고 믿으면 착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베트남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사드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틀 뒤엔 중국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리커창 총리와 만나 두 나라의 실질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새 출발에 합의했고, 연내 방중을 수락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리 총리의 “한국이 노력해서 중·한관계 발전의 장애를 제거하기 바란다”는 언급은 뭘까.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분석을 참고 할만 하다. 요약하자면 중국은 ‘개집 전략’으로 사드 보복에 반발해온 한국을 무릎 꿇렸다는 분석이다. 개 집에 가둬 괴롭힐 대로 괴롭힌 뒤 적당한 시간에 풀어주면 고마워한다는 그들 고유의 경험칙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 우리 입장에선 이간(離間)도 경계해야 한다. 중국은 상대 내부의 모순과 갈등을 이용해 서로를 갈라치는 반간책(反間策)으로 협상에서 우위를 지켜왔다.

무엇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이른바 ‘3불(不) 약속’은 한·중정상회담에서 뇌관이 될 개연성이 짙다. 강 장관은 국회에서 사실상의 항복 문서를 공개했다. 국회의원의 질의에 답변 형식을 빌어 “사드의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의 MD(미사일 방어) 체계에 참가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란 내용이 그것이다. 주권국가 포기 논란을 빚는 발언은 음흉한 상대 앞에 속을 다 드러낸 꼴이다. 협상의 주도권은커녕 우리의 운명인 균형외교 역시 물 건너 간다.

고려 때 능력을 발휘한 서희 장군의 외교술이 떠오른다. 열강 틈새에서 바둥대며 살아가는 후손들로선 영원한 전범이다. 서희는 송나라와의 국교 단절을 요구하며 거란이 침공하자 압록강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여진족 책임론으로 맞섰다. 황해도 봉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추가 군사행동에 대한 의지를 꺾어놓은 뒤였다. 이어 화의(和議)로 강동 6주를 개척한다. 강온 전략의 결과였지만 외교력의 바탕은 강력한 국방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적전분열을 노린 중국의 이간책이 두려운 판에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로 북한군이 귀순할 때 우리 군은 지켜만 봤다니 우려가 커질 대로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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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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