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시험기간만 되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거나 진다. 가을에도 마찬가지다. 은행잎의 빛깔만큼이나 노래져버린 아이의 얼굴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3일의 시험을 치르고 단 하루 2과목의 시험을 앞둔 딸아이가 아침밥을 억지로 삼키며 말했다. 떨려, 엄마.

좀 못하면 어때? 내 말을 듣던 딸아이는 그제서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완전한 내가 불안해서 불완전한 너에게 위로랍시고 건넨 말은 진심이었다.

불안을 고찰한 철학자 팡세는 `나약한 인간이여, 불안을 거두고 사랑을 믿으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은 타고나기를 불안과 마주하고 태어났으며 살아가는 동안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뜬금없지만 내가 회색을 좋아하는 것도 너무 뚜렷한 색을 선택했을 때의 불안을 적당히 얼버무려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팡세의 말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인 친구가 해 준 일화에서도 증명되었다. 하루는 수학문제를 간단히 풀기 위해 연습용 문제를 나누어 줬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틀려 울상을 짓고 있었다. 불안했던 아이 한 명이 제안했다. 실수를 한 것 같으니 다시 치르면 좋겠다고. 다른 아이들도 그 뜻에 동조했고 담임인 그 친구는 그러마 하고 다시 똑같은 문제지를 출력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아이들은 거의 같은 문제를 똑같이 틀려 놓았다. 불안함은 반복되고 그 반복은 또 다른 불안을 낳는다.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책을 읽는다. 신기하게도 혼자 사색하며 책을 읽다 보면 불안의 패턴이 보이기도 하고 안정이 된다. 책의 내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그런 위안을 주기도 한다. 나는 불완전하니까.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혹자는 자신에게도 그런 책을 추천해 달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상황과 정서가 다른데 독단적으로 내가 추천해 줄 수 있는 책은 없다. 짜증날 때 손에 잡히는 책, 화가 날 때 위로가 될 것 같은 책, 그림책이나 동화책도 해학적이고 철학적이며 미학적 요소까지 숨어 있으니 절대 제외하시지 말라는 당부만 드린다. 삶이 팍팍할 때 위로가 되는 한 구절은 소개할 수 있겠다. 조르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 해 보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고 있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 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대목이다. 너무 먼 미래에 얽매이지 말자. 아이에게 했던 말처럼 좀 못하면 어떤가. 현재를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유하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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