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선비들

선비란 무엇인가? 우리는 속된 세상과의 인연을 미련 없이 끊어버리고, 출세를 위한 학문이 아니라 학문 그 자체를 위한 학문에 사로잡혀 평생 글을 벗 삼다가 조용히 눈 감는 사람을, 학처럼 고고하게 정결한 삶을 살다가는 사람을 선비라 부르며 존경했다. 한마디로 선비는 붓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한국 사회를 오랜 세월 지배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이 행정가나 예비 행정가였기에 국가와 사회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성직자 집단 같은 도덕적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한말 세상은 광기와 광란과 미혹의 시대였다. 신유박해로 영·정조 시절 관용된 서학에 대한 관심을 일체 부정하고 서양 문물에 대해서는 오직 척화와 쇄국뿐임을 국시로 세운 것이 1801년이었고, 외세의 위협 앞에 강화도조약을 맺고 개국을 허락한 것이 1876년,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종지부가 찍힌 것이 1910년이었으니 길게 보아 약 100년, 짧게는 30년 만에 선비들이 영세불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질서는 산산조각 나서 무너져버렸다.

특히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유교적 태평천하의 꿈을 꾸던 사람들이 겪은 정신적 혼란과 상처, 절망은 상상을 불허한다. 그래도 그들은 스스로 선비임을 자각했다. 그런 문명의 충돌과 국권의 침탈 시기, 망국과 망천하의 위기를 동시에 맞은 `최후의 선비`들은 여럿으로 갈렸다. 상투와 도포를 보전하기 위해 살신성인을 부르짖으며 순국의 길로 나선 선비가 있는가 하면, 성현의 가르침을 폐할 수 없다며 세상을 버리고 은둔한 선비가 있었다. 또 개화에 전념하는 일이 선비의 본분이라 여겨 변절자나 친일 매국노라는 오명도 감수한 선비가 있는가 하면, 유교의 정신을 계승하되 사회적·시대적 현실 또한 외면하지 않으며 유교의 경장(更張)과 구신(救新)을 모색한 선비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함께 뒤엉키고 휩쓸리며 광란의 시대를 비틀비틀 걸어갔다.

이 책은 구한말 `위정척사`를 평생의 신념으로 삼으며, 개화에 전면적으로 반대한 최익현부터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세상을 버리고 은둔한 전우, 조선을 경장하는 게 선비의 지상 과제라고 생각했던 김옥균, 자유의 마음을 담아 절명시를 짓고 자결한 황현, 당대의 가장 `앞선 지식인`이었던 유길준, `을사오적`이자 1905년 을사조약문에 대한제국 대표로 이름을 남긴 박제순 등 20명의 `최후의 선비`들을 다룬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시대와 그들의 간절한 소망과 노력으로 조금이나마 흐름을 바꾸었던 시대가 오늘날의 우리 시대를 낳았다. `최후의 선비`들이 걸어간 길을 되짚고, 그들의 고뇌와 결단을 되새겨보는 일은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호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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