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무더웠던 계절이 지나고 독서의 계절인 가을이 왔다. 자연의 시계는 어김없이 선선한 바람을 불러와 책읽기에도 적당한 때가 왔으니 과학서적의 독서에 대해 한 말씀 올릴까 한다. 십 수 년 전부터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관련 서적과 강연 등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과학을 하는 필자도 관측과 수식계산과 분석만 한다면 인생이 너무 삭막해지는 것 같아 인문학과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서적을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읽은 책들은 대체로 인생을 알차게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필자는 과학을 하는 사람이므로 일반 독자들에게 인문학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의 서적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경이로운 자연현상을 친근하면서도 분석적인 설명을 통해 더 깊이 알아가는 방법은 합리적인 사고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일반인들까지 과학적 능력을 다 가질 필요는 없지만 첨단 과학기술이 일상생활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현시대에 과학에 대한 소양은 어느 정도 갖추는 것이 훨씬 좋다.

물론 과학이나 수학적인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종교나 인문학, 철학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성실하게 일하며 행복해질 수 있다. 아마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적이든 정치적이든 시민들의 무지를 틈탄 선동정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원자력발전에 대한 재개 여부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환경과 지구의 미래에 대한 문제에 대해 옳은 판단을 가지려면, 왜곡된 신비주의적 신앙과 믿음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역시 자연과학관련 서적들로부터 합리적인 사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을 통하여 지구환경에 대해서 깊이 알아갈수록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행하는 무모한 소비를 줄이고 대자연을 더욱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도 가질 수 있게 된다.

또한, 과학기술의 첨단시대에 과학적 문맹을 피할 수 있고, 민주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연과 환경정책에 대한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신실한 종교와 이익을 추구하는 사교를 합리적인 판단으로 구분할 수 있고, 6000년 정도의 젊은 지구를 주장하는 일부 단체의 궤변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합리적인 생각이 결여된 상태에서 일단 굳은 믿음으로 무장되어 있을수록 인간적인 의심조차 하지 못하고 맹신하게 되는 답답한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인터넷과 SNS가 발전되어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현시대에도 자신이 가진 신념과 믿음에 관련된 정보 외에는 다른 것을 아예 접하지 않거나 무시한다면 결국은 극단적인 사고의 집단(또는 개인)이 될 뿐이다. 왜냐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기 때문이다. 무한한 인간의 인지능력을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으로 한정지으며 합리적인 사고가 결여되고, 믿음이 획일적으로 흘렀던 중세가 암흑시대로 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과학을 통한 합리적인 사고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더불어 정신적인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 방법이다. 물론 소규모의 편중된 독서로 인한 자기합리화는 피해야 할 항목이다. 필자는 천문학을 하면서 거대한 대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더욱 겸손해 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에너지자원을 비롯한 지하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전 정부의 과학정책은 창조와는 거리가 한참 먼 것이었고, 현 정부의 과학기술관련 체계는 비대한 정보통신 분야가 함께 있어 과기정책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알 수 없고, 서민들의 휴대폰 요금의 인하 여부 속에 묻혀 있는 느낌이다. 우리나라도 근시안적 실적을 지향하는 좁은 의미의 발전보다는 기초자연과학에 대한 지속적이고 폭넓은 이해가 바탕이 되어 좀 더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가기를 바라며, 이는 정책입안자와 일반 서민들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긴 안목과 지속적인 열정에 의해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올 가을에는 꼭 여러 분야의 훌륭한 과학서적을 많이 탐독하길 권고 드린다. 이영웅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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