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나에게 힘이 됐던 버팀목은 친구들의 어깨동무였다. 어깨동무를 하고 가다 보면 나의 힘들었던 것이 사라지고 녹아 없어졌던 아름다운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어깨동무가 사라진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깨동무가 보이지 않는 오늘날 누군가 버팀목이 필요할 때 함께 할 친구가 없어 군중 속 고독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나만 혼자 외로이 단절된 것 같은 고독감이고 절벽을 마주한 것 같은 절망감이다. 이럴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을 등지는 막다른 길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어깨동무가 있다면 막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어깨동무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과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괜찮니? 힘들지!

어깨동무를 떠올리게 한 우리 시대의 큰 아픔이 자살의 문제이다. 자살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알 만큼 상식이 돼버렸다. 우리나라는 지난 15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사실상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놓은 나라다.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한 해 동안의 자살사망자를 집계한다. 우리나라는 2015년 기준으로 26.5명인데, 이는 충남도청이 자리한 홍성군 정도의 규모에서 한 해 동안 약 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전국에서 하루 44명, 평균 33분마다 한 명씩이다.

이 정도면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소중한 한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자살예방을 위한 중앙정부 내 전담부서도 없고 단 2명의 공무원이 자살예방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올해 보건복지부의 자살예방 예산은 99억 원으로 일본(7508억 원)의 1.3%에 불과하다. 자살시도자나 유가족을 위한 전국 단위의 정신건강 서비스는 예산과 인력의 부족으로 표류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새롭게 출범한 현 정부에서 내년부터 보건복지부에 자살과 고독사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해 적극 대응한다고 한다. 아울러 예산과 인력을 확충해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정신건강 안전망을 좀 더 촘촘하게 하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제대로 된 정부의 대응이 이제 시작된 셈이다. 앞으로도 국가 주도의 자살예방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그럼에도 자살예방의 책임을 국가에만 맡길 순 없다. 우리 삶의 문제는 제도와 정책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떠 올린 것이 어릴 적 어깨동무의 추억이다. 최근 `늦어서 고마워`라는 책을 출간한 뉴욕타임스의 칼럼리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미래를 이렇게 예측했다. "우리 세계는 점차 연결(connected)에서 상호연결(interconnected), 초연결(hyper-connected), 상호의존(interdependent)의 상태로 이동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발달해 그간 사람이 했던 많은 일을 하겠지만, 대신 인간은 마음과 관련된 일,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일 같은 인간이 잘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좋은 제도나 정책도 결국 사람의 손에 달려 있듯이, 자살예방 활동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친근한 방식으로 접근돼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우리의 관심이고 다가감이고, 배려이고 사랑이다. 이 친근함의 키워드는 바로 토머스 프리드만이 말한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요즘의 사회를 네트워킹의 사회라 하고, 온라인상의 SNS에 모두가 몰두하지만 정작 내 주위를 둘러보는 작은 실천은 왜 그리도 힘든지…. 진정성이 사라진 자신만의 만족을 위한 연결에 머물고 있진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생명을 던지는 일인 만큼 꼭 어떤 단서를 보이기 마련이다. 그들이 처한 외로움, 고독감, 단절감, 그리고 살고 싶다는 눈빛이 밖으로 새어 나오기 마련이다. 정부의 촘촘한 생명보호 안전망과 더불어 우리의 따뜻한 시선이 자살의 위기에 처한 사람의 마음과 연결될 때 희망은 거기서 싹트는 것이다.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 들어있는 9월을 보내며 `사람을 살리는 연결`을 떠올려 본다. 괜찮니? 힘들지!

박미은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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