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마당에는 대추나무가 있다

엄마는 주인집 몰래 푸른 대추를 따주었다

엄마는 팔이 길어 골라 딸 줄 알았다

하루에 세 개 이상은 따주지 않았다

감쪽같았다

세수를 하다 말고 손톱으로 비누를 긁어 놓으면

밤에 엄마는 쥐가 갉아먹었다고 소리를 쳤다

내일은 쥐약을 뿌려야지, 불이 꺼졌다

쥐약은 파란색이다 반짝거린다

나는 어둠 속에서 쥐처럼 손톱을 물어뜯었다

노오란 비누맛 감쪽같았다

모든 것은 재빠르고 흔적도 없었다

이깟 쥐 사는 방, 주인 여자와 싸우고 이사하던 날

엄마는 남은 쥐약을 대추나무 아래에 파묻고는

발로 나무를 콱 쥐어박았다

푸른 대추 후두둑 떨어졌다

마당에 붙어 줍고 있는 내 손을 몹시 후려치자

몇 알 도로 굴러가 버렸다

시인의 성장체험이 깃든 시다. 새마을운동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때. 가난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살던 때. 시인의 가족사는 무엇보다 가난이 지배하고. 집이 없어 세를 내며 이곳저곳 옮겨 살아가는 서러움만 무성하다. 시인의 가족사에는 아버지와 남성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1970년대 우리 문학에 나타난 아비상실, 아비부재의 모티프가 짙게 깔려 있다. 아비는 부권의 상징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국가의 주권이며 권력인 셈.

주인집 마당에는 대추나무가 서 있다. 가난 위로 우뚝 솟은 대추나무. 그것을 두고 주인과 가족 사이엔 긴장이 팽팽하다. 그건 손만 뻗으면 닿는 대추와 그걸 지키는 주인이 한 울타리에 살기 때문. 그때는 CCTV도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세 개씩 따주는 요령으로, 나는 비누를 갉아놓는 요령으로 그물망을 빠지는데. 그 사이 애꿎은 쥐만 욕먹는다. 모든 갈등을 쥐를 핑계로 풀려다 끝내 해결하지 못해 이사 가는 날. 엄마는 남은 쥐약을 대추나무 아래 묻고 나무에 발길질 한다. 푸른 대추알 후두둑 떨어져 구른다. 나는 주먹 속에 꽉 움켜쥐고 있던 대추 한 알을 감쪽같이 입에 넣는다. 엄마 무릎 사이에 끼어 용달차를 타고 하염없이 그곳을 떠나오는 중이었다.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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