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된 시간이 주는 의미는 동일화 되지 않는 감각에 가깝다. `그 여름의 끝`이란 루이스 로리의 소설에서는 평화롭기만 하던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던져준다. 가족의 부재는 어김없이 상처와 절망을 안겨주지만 작가의 섬세한 묘사와 삶을 다루는 긍정적인 태도 덕분인지 결말은 주변과의 `관계맺음`으로 환치된다. 우리는 가끔 사는 것에 대한 강렬한 염증을 느낀다. 염증의 원인은 다양하겠으나 누군가의 죽음, 그것이 루이스 로리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이거나 주변인일 경우에는 본인의 삶을 한 번씩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인간은 생존욕 때문에 모든 행동이 결정되고 동일화되기도 하니까.

내 파일에도 버킷리스트가 백개는 넘게 적혀 있었던 적이 있었다. 당신의 버킷리스트에는 어떤 목록들이 있을까. 2007년 잭 니컬슨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리스트`가 나온 뒤에 우리나라에서도 20대의 젊은 여성이 버킷리스트 목록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녀는 인도의 영화에 출연하고 부모의 집을 지어주는 일들을 해낸다. 리스트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의연하게 늘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몇 십개의 목록들을 지워야만 다음 번호로 넘어가 집중할 수 있는 삶으로 변해가던 중인 것이다. 그런 모습들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안타까운 지점이 있었다. 1번 다음엔 2번으로 그 다음엔 3번이다. 3번을 지워야만 4번으로 넘어갈 수 있는 티켓이 생기는 것처럼 구조화 되어 버린 삶이 행복할지 물음이 생겼다. 물론 계획적인 삶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님을 밝힌다. 단지, 행복하려고 만들었던 버킷리스트가 `행복해, 행복해, 행복할거야, 행복해야 해` 하고 `뇌새김리스트`로 변질되는 계단이 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목록을 지우는데 치중하기 보다 내가 왜 그런 목표를 정했는지 들여다보고 그 과정을 오롯이 즐긴다면 뒷 번호 몇 개 정도야 남겨 두어도 또 어떤가.

얼마 전 초등학교에 강의를 나갔다가 3학년 아이가 쓴 시를 보고 눈물을 왈칵 쏟은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는 예쁘다/ 나는 오빠 전화기로 엄마를 본다/ 나는 우리 엄마를 실제로 보고 싶다/ 멀리 있기 때문이다/ 멀리 있기 때문이다`

노래로 만들어진 아이의 시는 앞으로 어린이 시를 논할 때 좋은 본보기가 될 예가 되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절하기 때문이다. 소원은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아이의 소원은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 과정이 나와 주변에 어떤 의미가 되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할 일이다. 유하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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