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서늘해졌다. 가을이다. 이제 곧 독서의 계절이라며 우리는 너무 책을 안 읽는다는 개탄이 쏟아져 나올 때다. 헌데 정말 가을이 책 읽기 좋은 때인가? 그렇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가을은 1년 중 가장 책이 안 팔리는 계절이라고 한다. 그 역시 당연하다. 독서 안 하기에도 참 좋을 때 아닌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은 한창 봄날인 4월 23일이다. 세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1616년 그 날 같은 날에 사망한 것도 그 이유라고 하나 실상 봄날 책 읽기도 나름 운치 있는 일이다. 또 예로부터 독서삼여(讀書三餘)라 하여 겨울, 밤, 비오는 날을 책 읽기 좋은 때라 하였다. 그럴듯한 얘기다. 돌잔치를 할 때 돌상에서 서슴없이 먹과 붓을 고르고 책 읽는 시늉을 하여 조부 영조와 부친 사도세자를 흐뭇하게 했다는 독서광 정조. 그도 `독서는 언제든 즐겁지만 겨울 밤 깊고 적막할 때가 특히 더 좋다`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독서왕으론 단연 인조 효종 시기 김득신(金得臣)을 꼽는다. 충청도 증평 출신. 부친은 스물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천재였음에도 아들 김득신은 `소성(素性)이 노둔(魯鈍)`한 곧 타고난 둔재였다. 열 살에 겨우 글을 깨쳤고 책을 읽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그러나 끈기 하나는 대단했던 노력형으로 수없이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잡으면 적어도 만 번은 읽어야 비로소 읽은 것으로 간주하였고 사기열전의 백이전(伯夷傳)은 무려 11만 3000번을 읽었다 한다. 죽은 딸의 장례행렬에서도 백이전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부인 상중에도 곡소리에 맞춰 백이전을 읊고 있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수많은 실패 끝에 59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 결국은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은 조선독서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말년에 독서를 위해 터를 잡으니 바로 충북 괴산읍 괴강(槐江)변에 세운 `취묵당`. 경치 역시 일품이다.

알다시피 조선은 책 읽기가 유례없이 성한 나라였다. 유교는 배움과 익힘을 근본으로 삼으니 그 중심에 독서가 있었다. 하지만 정조가 죽자 세도정치를 거치며 조선은 급속히 무너져 갔다. 지천에 널렸던 독서인들의 존재감도 없었다. 독서로 다져진 그 기개도 활발했던 공론도 그리고 세상 이치에 대한 그 깊은 성찰도 맥없이 사라져갔다. 구한말 조선에 온 서양인들이 감탄했듯 여전히 조선의 곳곳에 책이 있었고 곳곳에 글 읽는 소리가 들렸지만 망국을 향한 열차는 되돌릴 수 없었다. 이른바 `만권의 책을 읽었으나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만(讀書萬卷 猶有今日)` 형국이었다. 독서만이 살 길이라는 것도 문제였고 주자학 일변도의 편식 독서도 문제였고 또 그런 독서인들만이 나라를 움직여 나간 것도 문제였다.

김득신에 대한 숙종 10년(1684) 9월 6일자 실록의 기록이 참으로 섬뜩하다. `김득신은 젊어서부터 글을 읽었고 늙어서 더욱 부지런하였으나 사람됨이 오활(세상물정에 어두움)하여 나라에 쓰인 바 없었다. 충청도 괴산에 우거하던 중 화적떼에게 살해되었다.` 여든한 살에 맞은 불의의 죽음이었다. 조선도 세상물정에 너무도 어두웠고 또 일본 역시 화적떼에 다름 아니었다.

세상의 지혜는 독서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반드시 독서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만 권의 책 읽기도 좋지만 만 리길도 다녀보라고.

이 가을 우선 백리길이라도 나서볼 일이다. 책 한 권 곁들이면 금상첨화! 유창영 대전보건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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