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충북의 한 도의원이 국민을 군중심리에 휩쓸리는 레밍에 비유했다가 여론의 뜨거운 맛을 봐야 했다. 레밍, 주머니쥐는 집단 개체수가 늘어 먹이 등 환경이 안 좋아지면 대 이동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선두 무리가 바다로 뛰어들면 집단 자살이 일어난다. 극심한 생활환경에 못 견딘 이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관점에서는 국민이 레밍이라는 등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의 수는 1만3000명에 이른다. 하루 36명 꼴이다.

지난달 28일 전남 장성 한 저수지에서 차량 한 대가 발견됐다. 차량 속에는 모녀가 숨져 있었다. 이 사건은 송파 세 모녀 자살의 재판이다. 사별과 이혼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가정을 엄마 혼자 힘으로 외줄타기를 하듯 근근히 꾸려갔다. 건강을 잃자 생활을 지탱해온 마지막 밧줄은 끊어져 버렸다. 세 모녀 사건 이후 60대 독거노인의 자살 사건이 이어지면서 큰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 노인은 LH공사의 지원을 받아 전세 형식으로 살아오다 집주인이 바뀌고 건물이 곧 철거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는 LH공사에 전화를 걸어 "내일 퇴거하겠다"고 밝혔고 이 세상에서 나갔다.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자신 때문에 수고하게 될 이들을 위해 식사비 10만원을 남겨놨다. 돈봉투에 적힌 `고맙습니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란 글귀는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한다. 왜 국밥이었을까. 마지막 순간 따뜻한 온기가 그리웠기 때문이리라.

이 사건들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정안,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등 세 모녀법이 나왔지만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위기 가정을 구하는 데에는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대전에선 중학생이 성폭력 문제 때문에 세상을 등졌다. 자본이냐 성이냐 원인은 다르지만 죽음을 선택하게 할 만한 폭력이라는 결과물은 같다. 이런 폭력에 한 개인이 저항하기 어렵다. 국가가, 사회가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는 12년째 OECD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미 있는 이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 9월10일은 세계자살예방의날이다.

취재2부 차장 이용민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