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로 불리고 소설로도 인기가 많았던 <토끼전>의 스토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토끼가 거짓말로 죽을 위기에서 벗어남`이라고 할 수 있다. 병든 용왕의 마지막 특효약으로 지목된 토끼의 간, 그리고 간을 바치기 위해 선택된 애꿎은 토끼 한 마리가 그 `무서운` 수궁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다니, 그것은 어쩌면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수궁은 바다 속 국가이며, 이 국가를 상징하는 용왕에게 산속 토끼 한 마리의 목숨쯤은 그리 중요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토끼가 살아난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국가에 대한 개인의 태도와 개인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속의 토끼를 수궁으로 유인하여 `너 죽어라`하고 외치는 용왕 앞에서 토끼는 아무 까닭도 없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힘없는 서민 개인이라 할 수 있다. <토끼전>이 엄청난 정치 풍자로 읽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토끼가 사는 세상은 추위와 배고픔, 포수와 독수리 등 늘 죽을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았다가는 힘센 짐승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긴장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매일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고달픈 하루를 이어가야 한다.

토끼를 유인하러 온 별주부는 바로 이러한 약점을 이용한다. 수궁에 가면 매일 맛있는 음식에 위험이 없이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게다가 벼슬도 시켜준다는 것이다. 토끼 입장에서 보면 혹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사는 산중을 떠나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어디서나 사는 게 일반이니 이민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산속을 떠나 수궁으로 국적을 옮기는 순간 죽음의 위기가 닥쳤다. 풍족한 생활은 고사하고 자신의 간을 탐내는 용왕 앞에서 꼼짝 못하고 죽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무시하지 말라! 토끼는 그래도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이어가는 개인주의자였으니 말이다. 용왕의 권위 앞에서도 주눅들지 아니하고, 토끼는 `뱃속에 간이 없으니 내 배를 따보라`며 큰소리를 탕탕 친다. 개인의 생명을 억압하는 봉건 권력 앞에서 살아나갈 지혜와 자신감을 보여준 것이다. 토끼의 거짓말에 깜빡 속아 넘어간 용왕은 자신의 이득 앞에서 사리분별을 못하는 무지와 천박을 드러낸다. 토끼의 생명을 함부로 여기던 용왕은 토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위협당하게 된다. 간이 없다는 토끼의 말을 믿게 된 순간 토끼와 용왕의 관계는 역전되고 오히려 토끼에게 잘보여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로써 토끼는 용왕을 제압하고 실컷 먹고 놀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이 용왕과 토끼 사이에 어쩔 줄 모르고 지켜보던 신하 별주부가 있었다. 별주부는 누구인가. 병든 용왕을 위해 아무도 세상에 나가려는 신하가 없을 때, 자청하여 토끼를 데려오겠다고 헌신을 한 충신 가문의 후예이다. 별주부는 간신히 토끼를 유인하여 용왕을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뻔한 거짓말에 용왕이 속아 넘어가고 이에 더하여 제대로 업무 수행을 못했다고 구박까지 받았다. 일단 배를 갈라보라는 자신의 충심어린 조언은 이미 용왕에게 들리지 않는다. 병든 용왕, 저물어가는 수국의 모습, 충신의 말을 듣지 않는 어리석은 군주 앞에서 별주부는 끝까지 도리와 의리를 지킨다. 별주부에게 용왕은 국가 그 자체이며, 자신의 국가에 희생을 바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토끼와 별주부는 모두 한 국가의 구성원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국가나 용왕과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토끼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 별주부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토끼에게 있어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길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밖에 없다. 대상이 아무리 용왕이라 한들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반면 별주부는 명예와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는 이념적인 인물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토끼와 별주부의 삶을 억압하거나 방해하는 존재가 바로 국가나 용왕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용왕은 주색을 즐기다가 병을 얻어 토끼의 목숨으로 자신의 병을 치료하려 했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 세상길을 나간 별주부에게 칭찬과 보상을 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국가는 그 권력을 이용하여 개인의 삶에 폭력을 행사하거나 억압의 도구로 활용했던 것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해주는 모습이 이러하다면 과연 그것을 제대로 된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봉건사회에서 민주사회로 이행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국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민이며, 국가의 역할과 책임은 더욱 커지고 있다. 72주년 광복절 기념 축사에서 문대통령은 "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해 국민들이 감수했던 고통"이 있었음을 말했다. 그리고 광복절을 맞아 "독립운동가를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 완전히 새롭게" 하는 동시에, "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할 것"을 약속했다. 변화하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라고 천명하였고,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음"을 못박아 국가의 자존심을 지켰다. 국민을 지켜내는 든든한 국가, 국민의 희생에 제대로 보답하는 국가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용왕은 어떻게 되었을까? 토끼가 눈 똥을 고이 싸가지고 간 별주부 덕에 쾌차했다고 전하니, 그것은 믿거나 말거나이다. 최혜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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