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가 탈 원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약 30%의 공정이 진행되던 신고리 5·6호기를 임시 중단시킨데 이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론화가 시작되었다. 3개월 후엔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고리 5·6호기에 일하던 1만2800여 명은 할 일 없이 3개월을 쉬어야 하고 이로 인해 들어가는 비용도 몇 천억 원이 될 것은 물론이고 그들에 딸린 가족들은 또 얼마나 노심초사할 것인가….

신규원전 건설과 별개로 이번에는 전력수급에 이상이 없다면 월성 1호기를 포함하여 2030년 이전에 몇 개의 원전을 더 폐쇄할 수 있다는 내용을 대통령이 언급하였고, 바로 임명장을 받은 신임 산업자원부 장관은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은 연장 없이 폐기할 것"이라고 대통령의 말을 확인시켰다. 필자는 원전 전문가로서 한국의 원전기술 자립의 중심에서 미국 현지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술자립을 이룩한 기술자의 한 사람이다. 이러한 얘기를 들으면 한 사람의 증인으로 감회가 유난히 새롭다.

고리 1호기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이미 영구퇴역을 하였지만, 고리 1호기와 동일한 설계의 원자력발전소들이 미국에서는 60년 동안 승인되어 운전하고 있다는데 유독 우리는 왜 40년인가? 에너지자원이 풍부한 미국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들도 20년 더 운전하는데 유독 한국은 40년만 운전해야만 하나? 고리 1호기의 원가 보상은 지난 30년에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운전은 공짜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특히 수명연장을 염두에 두고 전력회사는 새로운 기기들 교체에 약 1000억 원을 투입하였는데, 법의 절차에 의한 전문가의 검토의견도 받아보지도 않고 생략한 채 운전을 끝내게 했는가? 이 사실 확인을 역사에 맡길 수도 있지만 국민은 알아야 할 것 같다.

고리 1호기 60만㎾의 발전소의 잔존 가치는 세밀히 따져봐야 하겠지만, 적어도 20억 달러는 될 것 같다. 특히 이 원전을 20년간 더 운전하게 되면 800억㎾h의 전력을 더 생산할 수 있어 미국의 현실과 비교할 때, 현재의 가격으로 8조 원의 가치를 사장한 결과가 된다. 이와 동일한 용량인 월성 1호기를 퇴역시킬 경우 또한 동일한 계산이 나온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에 그래도 원자력의 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싼 전기와 전력의 안정적 공급으로 중화학공업과 산업발전의 성공적인 달성을 가능케 하였고, 세계 경제가 어렵다 하더라도 수출시장의 경쟁력을 갖도록 지원하여 지속적 수출증가를 이룩하게 하였으며 수출경기에 힘입어 내수시장을 도왔다 할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자립한 원전기술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일반 국민은 잘 모르고 있는 듯하여 가슴 아프다. 대통령도 원자력을 이해해 주지 않아 탈 원전카드를 꺼내 들었으니 이제는 국민의 바른 이해에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실 대선 때의 탈 원전공약은 지난 대선경험도 있어 대통령이 되고 나면 달라지겠지 하는 생각들을 대체로 가진 것 같다. 왜냐하면 국가 에너지정책이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고 과거의 대통령들도 그렇게 해 왔던 것이다.

더욱 문제는 현 정부의 작금에 진행하고 있는 탈 원전에 대한 정책이행인데, 절차를 밟으면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지시에 의해 진행되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러한 내용을 국민에게 바르게 알리도록 하고 대표기관을 통해 가부를 결정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데 지금은 어떤가? 대표적인 것이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이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며 알 권리가 있다. 전문가의 의견도 듣기를 원하는데 이번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에는 철저하게 전문가는 배제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그분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도 모르고 있다.

식량과 함께 에너지정책은 국가의 백년대계인데 어떤 정부도 일방적으로 밀어 붙여서는 안 될 일로, 지금이라도 문을 열고 다수의 국민의 의견을 청취했으면 한다. 문재인대통령께서 41%의 지지를 얻어 국가 통수자가 되었지만 나머지 59%의 반대가 있음을 인식해 주시기를 바랄뿐이다. 덧붙여 한마디 말한다면 이런 일은 보다 진지하고 시간을 가지면서 추진해 나가야지 인기주의나 여론주의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익환 전 한전원자력연료 사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