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화섭)
사진(이화섭)
요즘 대전 문화예술계에 자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자기 성찰이 부족하거나 오랫동안 관행화 돼 온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 상하관계의 조직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예술은 최소한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기에 다양성이 전제돼 왔고, 예술가는 영혼이 자유롭기에 창의성도 존중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아름다움의 구원`이라는 저서에서 오늘날 우리는 미(美)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예술이 타자를 구원해야 하는 과제에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예술이 한순간 덧없는 만족의 대상들만 산출해 낸다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하가 스승께 묻는다. `교묘한 웃음이 입매가 예쁘며 아름다운 눈이 선명하구나, 본 바탕으로 채색을 한다 하니 무슨 말입니까?`

공자가 답하기를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후에야 이루어지는 것이다`했다. 이 말은 곧 사람은 바른 바탕을 갖춘 뒤에 꾸밈을 더 해야만 자기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고사성어다.

색을 칠하며 그림 그리는 일이 문화라면 그 바탕은 정신적 소양을 갖추는 것, 즉 정신이 혼탁한 그 위에 제 아무리 문화와 예술로 색을 입힌들 온전할 리가 없다는 일침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점점 더 빠르고 자극적인 것을 쫓아왔고, 사흘에 두 배씩 지식이 증가하는 시대를 산다. 그러나 그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다 넣을 수 없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언제든 검색하면 된다. 그러기에 아는 것이 더 이상 힘이 아니요, 지식이 경쟁력인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생각이 힘이고 경쟁력이다. 실력 위에 인성이라 하듯 기업에서도 인재를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인성이다. 매너는 가르칠 수 있어도 인품은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엘리트 중심에서 벗어나 누구나 스포츠를 즐기고 그 가운데서 엘리트 선수가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생활체육 시대에는 성적보다 스포츠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대전에는 그랜드 캐년 같은 1초 관광지는 없어도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처럼 역사적인 배경이나 스토리가 담긴 관광지는 많다. 즐기지 못하면 예술이 아니라 하듯, 자연 그대로, 스토리를 찾아 즐길 수 있어야 관광대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문화와 예술, 스포츠와 관광은 그 자체가 가치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내기도 한다. 지금 우리 앞에는 현실과 가상이 순환하여 현실을 최적화 하는 융합의 혁명이라는 4차 산업 혁명의 파도가 놓여 있다. 인류의 미래는 생물학적 진화보다 문화적 진화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말처럼 문화와 예술이 `4차 산업 특별시 대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인문적 소양, 즉 인성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미당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 중에 나오는 `침향(沈香)`이라는 시가 있다.

`침향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담가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아무리 짧아도 200-300년은 가라앉아 있던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시작하지만 1000년쯤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겠지요.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드는 것은 자기들이나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을 위해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후대들을 위한 겁니다.`

우리는 지금 질마재 사람들과 같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지도 모를 후대를 위해 천년 향을 묻을 수 있는 심성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예술 없는 사회는 야만이요, 스포츠는 인류의 마지막 통합수단이라 했다. 스포츠와 예술은 혼탁해져 가는 이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보석중의 보석이다. 우리 문화예술, 체육계가 천년을 이어나갈 향기로운 사회, 영혼이 맑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날이 하루속히 다가오기를 꿈꾸어 본다. 이화섭 대전시 문화체육관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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