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의 입맛대로 문화정책을 재단함으로써 편 가름을 부추기고 다양성을 가로막는 등 문화적 퇴행을 초래하는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심처에서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지원에서 배제한 것은 문화를 정권유지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정치적 판단이 섰기에 가능했다. 이는 자기 검열을 강요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까지 억압하는 반헌법적 행위임에도 관련자들은 최고 권력자의 심기를 보다 중요시했다. 법원이 판결문에서 `헌법과 문화기본법에 명시된 문화·표현 활동이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자, 검열을 금지하는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고 일갈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여전히 김 전 실장 등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정당성을 부여하며 2심과 3심을 통해 법리적 판단을 더 구해보겠다는 태도다.
조만간 문화체육관광부에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라고 한다.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를 담당한 권력자들과는 별도로 이를 실행한 공무원 등에 대한 조사가 있을 듯하다. 문화예술계 입장에서 볼 때, 이들도 가해자지만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어기지 못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위원회는 이를 감안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데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그래야 제2의 블랙리스트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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