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생근·조연정 엮음/문학과지성사/288쪽/8000원

1200원이던 시집 값이 8000원이 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그사이 통권 500호에 이르렀고 수많은 문학청년의 가슴에 단어와 문장, 기호가 내리꽂혀 울림을 만들었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00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가 출간됐다.

문학의 위기라 불리는 시대, 보는 이가 줄어 이른바 전업으로서 살아남기가 빠듯해졌어도 시는 늘 질긴 목숨을 부여잡고 세상에 태어났다.

통권 1호인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필두로 이성복, 최승자, 오규원, 황지우, 김기택, 한강, 류근 시인까지 당대 걸출한 필력을 가진 이들의 작품이 시인선에 올랐다.

1권의 유고집만을 낸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은 1989년 첫 선을 보인 후 지금까지 82쇄를 찍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떨어진 시의 위상과 견줬을 때 대다수 시집이 1회 이상 증쇄한 점은 독자 그리고 세계와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문학과지성사는 100번째 시집이 될 때마다 이를 기념하려 모음집을 냈다.

통권 100호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가 출간된 이후 이 전통은 이어졌다.

500호 모음집 제목은 황지우 시인의 `게 눈 속의 연꽃` 구절의 일부를 바꿔 만들었다.

내용은 출간된 지 10년이 넘도록 독자의 사랑을 받은 85권을 선정해 저자인 65명의 대표작 2편씩 추려 130편을 엮었고 발문, 시인 소개, 시인선 목록도 담았다.

발문을 쓴 조연정 문학평론가는 "시의 가능보다 시의 무능이 더 많이 증명되더라도 문지 시인선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갱신하고 결국에는 시의 가능을 증명하는 일을 하길 희망한다"고 기술했다.

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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