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 박사
이영웅 박사
최근 터키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을 삭제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동안 세속주의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회귀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에르도안 정부가 진화론의 과학적 배경과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올 가을학기부터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삭제하기로 잠정 결정한 것이다. 터키 교육계 인사들은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과학적 사실에 입각한 진화론 교육을 계속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이슬람경전인 코란에는 성경의 창세기와 마찬가지로 조물주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진흙으로 빚고 다시 아담에게서 이브를 창조했다고 쓰여 있다. 현재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하나뿐이다.

가톨릭 신자인 필자도 어린 시절에는 철길의 평행선처럼 접점이 없는 창세기의 인간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천문학을 연구하고,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갖게 됐다. 조물주가 우주를 창조할 때, 자연의 법칙까지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자연의 순리를 만들고 그 순리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조물주의 가장 큰 권능은 빛을 포함한 우주를 창조한 것이고(우주창조보다 더 큰 기적이 있을까. 실제 우주는 빅뱅으로 탄생했다), 두 번째가 자연의 법칙을 만든 것이다. 세 번째가 예수를 통한 사랑(탄생과 죽음과 부활)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존재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생명의 향연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 감사할 일이다. 그 자연은 조물주께서 만든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그 자연의 법칙에 따라 만물이 진화해 나간다고 생각하면 굳이 창조론과 진화론이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진화를 통한 창조라고 생각하게 됐다. 조물주께서 스스로 만든 모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며 마술 또는 기적처럼 생명을 창조한다고는 믿지 않게 된 것이다.

약 400여 년 전 지동설을 강력하게 증명하였던 갈릴레오는 `자연의 문제는 성경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실험이나 논증에 의하여 다뤄져야 한다`, `성경은 인간이 하늘로 가는 것은 알려주지만 천체가 운행하는 길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는 등의 명언을 남겼다. 성경이나 코란은 합리적인 신앙으로 접근해야 하며, 만일 과학으로 접근한다면 쉽게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책이다. 천동설을 등에 업고 지동설을 억압하며, 자연에 대한 연구를 막으며 소중한 인류 역사를 무려 1200년 동안이나 낭비했던 중세의 암흑시대를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수없이 많은 자연의 경이로운 현상을 모두 조물주의 것으로 돌리고 원인 탐구를 중단한다면, 우리 자신의 무지를 신으로 대치하는 꼴이 돼버린다. 참 신앙을 신비주의적 미신과 같은 그릇된 믿음으로 격하시키고, 헛된 위안을 얻으려는 것과 같다.

앞으로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으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일도 좋겠지만, 이 땅을 천국처럼 만드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을 통해서이다. 여기서 사랑이라 함은 자신의 종교단체에서 헌신하고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고, 그 대상이 소외된 약자층이어야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실천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신앙을 가진 과학자로서 필자는 과거에 종교와 과학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던 간에 현재와 미래에는 종교와 과학은 서로 배치되거나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길 바란다. 그를 위해 신앙인들도 최소한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소양을 갖기를 바라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우주와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경이로운 세계를 음미하며 감사하는 일이다. 또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는 신실한 종교단체와 왜곡된 믿음을 바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교를 구별하는 능력도 기르게 한다. 진화 여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며 올바른 믿음을 가슴에 담고 오직 사랑을 실천하는 것만이 답이다. 진화론에 대한 터키정부의 최종안이 합리적으로 결정되길 빌어본다. 이영웅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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