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태양 아래 사람도 양떼들도 무기력해진다. 푸른 들판조차 타오른다. 산들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북풍이 불어닥친다."

비발디의 `사계`(四季) 가운데 `여름`의 1악장은 작곡가가 직접 쓴 소네트에 음악을 입힌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인의 필청음악이 되어버린 비발디의 `사계`.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전음악 순위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이 협주곡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현역반`만 100여 종에 달한다. 사계는 12곡으로 이루어진 바이올린 협주곡집 `화성과 창의의 영감`의 처음 4곡을 말한다. 사계는 어떻게 세상에 태어났을까?

프랑스 발루아 왕조의 샤를 6세는 1393년 왕비가 아꼈던 시녀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신하 5명과 함께 오랑우탄으로 분장하고 춤을 추었다. 이렇게 프랑스 궁정에서 시작된 가면무도회는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상륙했다. 567년 훈족에게 쫓긴 롬바르디아 인들은 수백만 개의 떡갈나무를 갯벌에 박아 그 위에 베네치아를 만들었다. 한정된 땅에 많은 사람이 살아야 했으니 인구밀도는 높고 건물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야만 했다.

십자군 전쟁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베네치아 인들의 삶은 풍요로웠다. 좁은 수로와 골목에서 외부인과 마주치기 십상인 그들에게 가면은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가면을 쓰면 대담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뱃사공과 외지인들로 풍기가 문란한 가운데 가면무도회의 등장은 귀족들까지 합세해 베네치아에 수많은 사생아가 태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1335년에 세워진 피에타 양육원은 여자 사생아를 받아 키운 공식기관이었다.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국가는 악기를 주고 음악교육을 시켰다. 1706년부터 비발디는 피에타 양육원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오케스트라의 수준은 당시 유럽 최고였다. 비발디는 이 정상급 악단을 위해 수백 개의 협주곡을 작곡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삶의 절반은 종교에서 말하는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나머지 절반은 신께 용서를 비는 데에 바치고 있다." 당시 어느 외국인의 탄식처럼 내뱉은 이 말은 베네치아의 타락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게 해준다. 비발디의 사계는 상처 입은 소녀들을 위한 `힐링용` 음악이었던 셈이다. 유혁준 클라라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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