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이 광주전남지역 문화운동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잠시 서울에 들른 것은 1980년 5월 16일 금요일이었다. 받을 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말을 서울에서 지내던 중 그는 광주로부터 올라온 비보를 듣는다. 문동환 목사의 교회 겸 공동체였던 `새벽의 집`에 도착해 있는, 광주 상황을 알리는 자료들은 `마치 조난자가 절해고도에서 구해달라고 아득하게 먼 곳에서 파도 속에 띄워보낸 병 속의 편지` 같았고, 그는 서울의 몇몇 동지들과 함께 그 `병 속의 편지`에 담긴 진실을 알리기 위해 소위 UP(underground paper)조를 만들어 거리로 나서야만 했다.

최근 출간된 황석영의 자전 `수인`(문학동네)에는 아득해지는 대목들이 많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진실의 자유로운 유통이 봉쇄됐던 시절의 저 숱한 희생들이었다. 유신정권 이래의 광기어린 언론 통제 속에서 운동가 혹은 활동가들의 투쟁이란 결국 진실로부터 격리돼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거나 혹은 바치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실감했다. 그분들의 입장에서 촛불혁명을, 이를테면 태블릿 피시의 진실을 보도한 언론과 그 진실을 신속히 공유하며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생각해 보면, 나조차도 벅찬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지난 시대 진실의 운명을 생각할 때 또 한 번 착잡한 것은 당시 그토록 위태로운 진실의 생명을 짓이긴 이들 중에 문인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수인`의 한 대목을 펼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펜클럽은 뜻한 바 있어 펜클럽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당시 한국펜클럽은 문인협회나 예총 등과 마찬가지로 관변단체에 불과"했으므로, 미국펜클럽 회장이었던 수전 손택은 황석영 등을 위시한 민주 진영 문인들과 접촉하여, 김남주 시인 등 구속 문인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통과시키고 한국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뜻을 전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결의문 채택은 부결됐는데 그때 분해서 눈물을 삼키던 수전 손택에게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한국펜클럽 측의 환호였다. 당시 기사에 `동료 문인을 석방하자는 해외 문인들의 결의안을 부결시키고 오히려 기뻐하는 한국 문인들의 정체성에 국제펜클럽 회원들은 혼란을 느꼈다`라는 내용이 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훗날 밝혀진 저 부결과 환호의 내막은 이렇다. 한국펜클럽 회장과 관련자들이 대회 전날 해외 문인들의 호텔방을 방문해 거액이 담긴 봉투를 돌리며 반대와 기권을 유도했다는 것. 자, 이것이 군부독재 시절 자칭 `보수` 문인들의 활동이다.

대한민국에서 `보수`란 무엇이었던가. 최근 출간된 사회학자 김종엽의 저서 `분단체제와 87년체제`(창비)의 한 대목(2장, 각주 20)에서 저자는 `보수와 진보` 대신에 `보수와 민주`라는 명명법을 택하고 그 이유를 밝힌다. "구별의 두 항은 각각 상대가 아닌 것을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즉, `보수와 진보`라는 구별에서 보수는 `진보가 아닌` 것이 되지만, `보수와 민주`라는 구도에서 보수는 `민주가 아닌` 것으로 제 자리를 부여받는다는 것. "이렇게 구별하면 분단체제 아래서 보수가 민주적 법치를 온전하게 수용하지 않는 집단임을 보여줄 수 있다."

`수구`라 불리는 `냉전형 보수`와는 구별되는 소위 `합리적 보수`도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법하다. 그러나 "수구세력이 이른바 합리적 보수에 대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 보수파의 특징"이라는 것이 저자의 답변이다. 과연 그렇다. 자신들도 안 믿는 안보 선동으로 생존을 도모해온 `냉전형 보수` 정당의 최근 지지율이 15%인데, `합리적 보수`를 선언한 정당의 지지율은 여전히 5%니 말이다. 이것이 한국적 보수의 참담한 실상이다. 보수의 위기? 아니, 진실을 감옥에 가두고 돈 봉투로 틀어막아온 `반민주` 세력의 위기일 뿐이다. 한국의 보수는 시작된 적도 없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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