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로고

[수요프리즘] 허물

2017-06-27 기사
편집 2017-06-27 14:58:59

 

대전일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 페이스북
  • 구글 플러스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블로그
  • 네이버밴드
  • 핀터레스트
  • 기사URL 복사

첨부사진1
따가운 햇살 아래 뱀 한 마리가 기어간다. 오래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처음이던가. 산책길에서 마주친 그 뱀은 화사였다. 몸의 색 조화가 꽃과 같이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길 초입에서 그와 눈이 맞았다. 발이 멈춰지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들어 올리고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그가 슬며시 자리를 뜬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풀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간다. 긴장이 풀린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서정주. '화사' 부분). 서정주 시인의 초기 시를 대표하는 이 작품은 그가 스물두 살에 발표한 것으로 1941년에 발간된 그의 첫 시집 '화사집'에 수록된 시이다. '뱀은 구약성서에서 이브를 유혹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한 원죄적 슬픔을 타고난 존재. 화사라는 존재에 대한 매혹과 혐오라는 상반된 감정을 통해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을 그리고 있는 이 시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여실히 내어 보이고 있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파충류센터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허물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비단뱀의 영상을 보았다. 비단뱀은 허물을 벗다가 동그라미 모양이 되는 바람에 출구를 찾지 못했고 결국, 약 세 시간을 빙글빙글 돈 끝에 겨우 자신의 허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뱀은 허물을 벗는다. 단백질의 일종인 젤라틴으로 된 비늘은 코팅된 상태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과하게 들어오는 습기를 막을 뿐만 아니라 몸속의 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붙잡아 준다. 하지만 이런 피부는 한번 만들어지면 더 이상은 자라지 않기에 성장하면서 새로운 피부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탈피다. 파충류와 곤충류에서도 많이 볼 수가 있다.

하지만 허물을 벗는 것은 비단 곤충류와 파충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온 남편이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며 바지도 양말도 돌돌 말아놓기도 하고 아내 또한 그러하기도 하다. 이른바 허물벗기다. 간혹 집안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 정도는 애교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겠다는 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신념이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조직한 단체가 당이다. 그리고 그들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이 당명이다. 나는 선친으로부터 이름을 물려받았다. 물론 많은 이유로 개명을 신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그렇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은 존재감 그 자체다.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약속으로 정당들은 이름을 바꾼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이름만을 바꾼 것이다. 인적청산이니 부정부패 근절 등 달콤한 약속으로 믿어달라고 한다. 그 말에 우리는 지금까지 현혹되어 왔다. 이른바 정당의 허물벗기다.

자신의 허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뱀은 죽을 수밖에 없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비단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한 정당들의 마지막 선택은 당명 개정이다. 하지만 뱀이 허물을 벗어도 뱀인 것처럼 아무리 이름을 바꾸었어도 그 내용물이 바뀌지 않는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서정주 시인은 '화사'에서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말과 행동의 일치. 말만 앞세우고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신뢰를 잃는다. 하물며 국가를 이끌어가겠다는 정당이라면 국민들이 어찌 신뢰를 보낼 수 있겠는가. 사퇴(蛇退)라는 말이 있다. 뱀의 허물을 뜻한다. 동음이의어이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 발목 잡는 것이 정치라면 진정으로 사퇴(辭退)하길 바란다. 이태관 시인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