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토론을 하다 보면 학생들의 표현 가운데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저희 나라`라는 표현이다. `저희 나라`라는 표현을 누군가 하게 되면 으레 또 "`저희 나라`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라고 해야 합니다"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저희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한 학생은 "아, 죄송합니다. `우리나라`라고 하겠습니다"라고 멋쩍어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어 방침에 의하면 `저희 나라`라는 표현은 틀리다. 이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자기의 나라나 민족은 남의 나라, 다른 민족 앞에서 낮출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낮춤말인 `저희`를 써서 `저희 나라`와 같이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나라에서는 새해 첫날에 무엇을 드십니까?"와 같이 외국인이 질문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떡국을 먹습니다." 또는 "한국에서는 떡국을 먹습니다"와 같이 말하면 됩니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다. 우리는 `저희 학교`나 `저희 아버지`라는 표현을 쓴다. 이러한 표현은 표준어법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 우리가 `저희 학교`나 `저희 아버지`라고 표현한다 해도 낮추는 대상은 `학교`나 `아버지`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 자신이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어 설명에 의해서도 이 점은 확인된다.

``저희 아버지`와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므로, `우리 아버지`를 상황에 따라서 `저희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저희`는 `우리`만 낮춘 것이지 `우리 아버지` 전체를 낮추어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의 설명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저희`라는 표현의 의미를 일관되지 않게 설명했다는 점이다. `저희 나라`라는 표현에 대한 설명에선 `저희 나라`가 `나라`를 낮추는 표현이라고 설명했지만 `저희 아버지`라는 표현에 대한 설명에선 `저희 아버지`가 말하는 사람만을 낮춘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어법에 따르면 `저희 아버지`에 대한 설명이 옳다. 따라서 `저희 나라`라는 표현을 `나라`에 대한 겸양의 표현이라고 설명한 국립국어원의 답변은 옳지 않다. 문법적으로 `저희 나라`라고 표현한다 해도 나라 자체를 낮추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을 상대로 말할 경우 `저희 나라`라고 표현한다 해도 틀리지 않다.

물론 `저희`가 `우리` 전체를 낮추는 표현이기 때문에 `저희 나라`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낮추는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반론도 `저희 학교`나 `저희 회사`라는 표현을 고려할 경우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저희 학교`라고 표현한다 해도 교장이나 총장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 모두를 낮추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의미보다는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둘째, 만약 국립국어원의 설명대로 `저희 나라`라는 표현이 `나라`를 겸양하는 표현이라 한다 하더라도 왜 그것을 옳지 못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느냐 하는 의문이 든다. 자신이 속한 학교나 단체 등에 대해 그 구성원은 얼마든지 불만 섞인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왜 나라만큼은 겸양 표현의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유난히 침략을 많이 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 우리는 은연중에 국가, 혹은 민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을 어느덧 당연시하게 되었다. 민족주의(nationalism)라는 표현은 서구에서는 대단히 부정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심지어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보편적 사회질서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진영에서조차 민족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세력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는 과거에 한국의 역사를 `국사(國史)`라고 표현해왔다. `국사`, 즉 `나라의 역사`라는 표현의 밑바닥에는 `인정받아야 할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국수주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잘못된 표현이다. 이는 과거 자신들의 학문을 `국학(國學)`이라 일컬었던 제국주의 시기 일본이 저지른 과오를 반복하는 것이다.

요즘은 `국사` 대신 `한국사`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이제는 `저희 나라`라는 표현을 허용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국가도 가족이나 회사, 학교처럼 여러 집단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채석용 대전대학교 H-LAC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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