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는 B612라는 소행성에 바오밥나무가 자란다. 거기서는 싹을 틔우기가 무섭게 뽑아버려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린 왕자의 `바오밥나무`는 쓸데없는 욕심과 같은 것을 은유한 것이다.

소설과는 달리 바오밥나무는 매우 유용하다. 둥치 직경이 9-12m나 되게 자라고, 탄소측정을 해보면 몇 천 년을 산다. 이 나무가 오래되면 내부에 빈 공간이 생긴다. 많이 살았으니 다른 이들을 위해 속을 내어줄 줄도 아는 모양이다. 과육은 오렌지보다 여섯 배나 많은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고, 우유 두 배 분량의 칼슘이 담겨 있다. 이것을 빻아 햇볕에 말리면 오래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된다. 이파리 역시 무기질 덩어리다. 나무 그늘은 넉넉한 쉼터가 되지만 껍질의 섬유는 밧줄과 낚싯줄을 만들 때 쓰기도 한다. 최근 아프리카의 어느 국립공원에서 물이 필요한 코끼리들이 이 나무를 송곳니로 파헤쳐 많이 죽게 했다. 수 천 년을 지켜낸 뿌리 깊은 나무도 단순한 이유로 생을 마칠 수가 있다.

예전 사람들은 나무의 쓸모를 생각했다. 겨울의 북서풍은 뒤뜰에 대숲을 만들어 막았고, 동네마다 어귀에 크게 자라고 오래 사는 느티나무를 두어 마을을 지키고 오가는 이들을 살피게 했다.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었고, 딸을 낳으면 밭두렁에 그 아이 몫으로 오동나무를 심었다. 또 집 근처나 사찰주변에 열매를 매달 수 있는 나무를 심어 보릿고개의 부족한 식량과 가족 건강을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나무의 쓸모는 말로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나무가 삶 자체여서 거기서 약을 구했고, 그 앞에서 안전을 빌거나 제를 지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 소중한 나무들을 매일 죽인다. 개인이 노력한다 해도 이 사회의 엄청나게 많은 종이 소비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수입하는 목재의 대부분은 보르네오 산이다. 그곳은 아시아의 허파로 불리는데 원시림의 30%가 현재 사라져버렸다. 코끼리가 수천 년을 산 바오밥나무를 쓰러뜨리는 것과 비교가 안 된다. 우리나라 1인당 종이소비량은 세계 11위로 높이 18m 지름 22㎝의 소나무 87그루 분량이라고 한다. 숲으로 말하자면 90㎡의 면적을 30년 동안 가꿔야 한다. 사람 목숨 지키듯 한 그루 나무를 지킬 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뿌리 깊은 나무가 그립다. 연용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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