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달이나 되어 전화한 내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밥 앞에서 보란 듯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

그래서 정말 밥이나 한번 먹자고 만났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 밖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처럼

무얼 먹을 것인가 숭고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결국에는 보리밥 같은 것이나 앞에 두고

정말 밥 먹으러 나온 사람들처럼

묵묵히 입속으로 밥을 밀어 넣을 때

나는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밥을 혀 속에 숨기고 웃어 보이는 것인데

그건 죽어도 밥에게 밀리기 싫어서기 때문

우리 앞에 휴전선처럼 놓은 밥상을 치우면 어떨까

우연히 밥을 먹고 만난 우리는

먼산바라기로 자꾸만 헛기침하고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너와 나 사이 더운 밥 냄새가 후광처럼 드리워져야

왜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가

으깨지고 바숴진 음식 냄새가 공중에서 섞여야

그제야 후끈 달아오르는가

진지한 회의가 진행 중에 긴장 흐르거나 지루할 때 "밥 먹고 합시다"를 외친다던가. 식욕이라는 본능 속으로 사안의 중대함은 가라앉겠지. 열흘 굶어 도둑질 안 할 사람 없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게 식욕이 참 유치하기도 하다. 누가 누구를 접대하고 또 누구에게 접대 받는다는 것은 결국 밥의 문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지만 그렇지 않고. 밥 앞에서 절대 평등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 모든 문제는 밥으로 통한다. 그래서 우리 밥을 함께 먹으며 친해진다 하고. 밥을 같이 먹으며 화해한다 하지만. 그러나 밥, 밥, 밥. 밥은 만사형통인가.

하지만 이 시의 화자는 그런 것만 아닌 듯. 서너 달이나 되어 전화한 친구가 그에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시인은 스스로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고 느낀다. 그는 밥 앞에서 보란 듯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 또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단다. 그래서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왜 단도직입적이 없고 워밍업이 필요한가를 외친다. 그래서 시인은 오늘 밥공기를 박박 긁으며 누군가에게 말한다. 언제 한번 또 밥이나 먹자고. 그러나 진정 밥에도 사랑이 빠지고 나면 그건 그저 사료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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