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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 춘추복 생각

2017-05-30 기사
편집 2017-05-30 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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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가 바뀌고 있다는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봄인가 싶더니 달력 한 장 사이로 어느새 반팔 옷을 입어야 하는 여름 날씨다. 그러고 보니 춘추복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봄과 가을 옷이 없어졌다는 건 계절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동해의 상징적인 생선이었던 명태가 사라지고 남쪽 바다에서 나던 대구가 북단인 거진과 대진 바다를 차지한 지 오래 되었다. 냉수성 어족들이 북쪽으로 헤엄쳐 가고 봄꽃인 개나리가 가을에도 핀다. 호되게 찾아오던 유월 장마는 이미 옛말이 되었다.

해마다 계속되는 봄 가뭄으로 논밭의 작물들이 말라간다. 내륙은 사막이다.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여 보지만 비 소식은 아주 멀다. 삶의 여유는 열심히 일하고 편하게 휴식하는 것일 텐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에는 여분이 없다.

지구 어느 곳에서는 애먼 목숨들이 느닷없이 사라지고 슬픔에 중독된 이들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으로 오늘을 안도한다. 과학과 문명은 참으로 많은 편리를 주었으나 세계관도 또한 바꾸어 놓았다. 이기심은 본시부터 나쁜 것이 아니었다. 이타를 강조한 동양적인 세계관은 동양이 스스로 먼저 허물었다. 시초는 일본이었고 지금은 중국이다. 아주 예민한 사안이나 황사와 미세먼지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당사자인 중국은 정작 강 건너 불구경이다. 황사의 발원지인 내몽고 쿠부치 사막에다 녹화작업을 하는 이들도 중국인이 아닌 우리 한국 사람들이다. 중국에서는 겨우 길만 내어주고는 그만이다.

우주의 다른 행성들처럼 우리 지구도 목숨의 한계가 있는 것일까. 당대를 살아 있다고 마냥 안도해도 되는 것일까.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반론하면 제대로 변명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인류는 지구의 수호자라거나 지배자라는 자부심을 이제는 버려야 할 것만 같다. 너무 많이 망가뜨려 놓은 자연을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모셔야 하지 않겠나.

말썽도 많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강행했던 4대강 사업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의 대통령은 필생의 사업이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은 현실이다. 전문 지식과 권한을 가지지 못한 나는 안타까움만으로 심경을 대신할 수밖에 없지만 정말 화가 나는 건 그 사업에 동조했던 학자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겠지만 학자적인 양심과 소신을 외면한 그들이 강단에서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곡절 많고 말도 많았던 겨울이 지나고 짧은 봄을 건너 다시 여름인데, 세상은 목마름으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갈구한다고 해서 소망처럼 세상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바람은 끝이 없다.

하늘을 쳐다보는 농심(農心)들의 목이 탄다. 애써 심어놓은 작물들을 바라보는 심정을 안타까움이라 말하기엔 너무 가볍다. 모든 게 다 하늘의 일이다. 어떤 손길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기우제도 옛 말이다. 현명한 한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하다면 진즉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었겠다.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봄을 건너 여름까지 왔지만 한계점에 이르렀다. 우리는 참으로 열심히 오늘을 살고 내일을 위해 달려왔지만 현실은 기대했던 만큼 행복하지 못하다.

사라진 춘추복이 무더위와 가뭄으로 암울한 여름을 고민하게 한다. 없는 살림에 어렵게 장만하곤 했던, 푸르른 하늘과 싱그런 유월의 바람이 코끝을 스치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미세먼지와 폭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삶이 지나온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조금은 더 아픈 지구를 위해 죽어가는 생명들을 돌보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곤 했던가.

여름을 무사히 건넌다고 해도 머지않아 다가올 계절이 또 걱정이다. 결실과 추수의 시절에 찾아오는 가을장마가 목마른 여름보다 더 무섭다. 춘추복을 장만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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