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성균관대 `SSK 위험커뮤니케이션 연구단`에서는 "우리는 안전한 나라에서 안심하며 살고 있는가?"라는 대국민 인식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이 내놓은 답은 한마디로 "우리는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서 안심하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였다. 각종 사건·사고, 재난·재해 등을 겪는 과정에서 국가 사회의 예방이나 대응조치가 부족했던 결과 국민의 불신은 여전하다.

대전에서는 작년 11월 4일, 한국원자력연구원(이하 KAERI)에서 방사성폐기물을 무단 폐기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었다. 이로부터 대전 지역 안에 있는 원자력관련 시설들의 안전성, 관련기관과 종사자의 안전 불감증 등에 많은 의심이 제기되고 불안이 증폭된 바 있다.

방사성폐기물 무단 폐기에 대한 실태조사를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하 KINS)은 총 14명으로 긴급히 조사단을 꾸려 특별점검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총 36건의 위반사실이 확인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주요 위반사항은 2011-2016년 기간 동안 방사성폐기물 무단 폐기 및 부적합 처리, 허가범위를 벗어난 용융·소각·제염, 기록 허위 기재·누락 등이었다.

KINS는 조사과정에서 KAERI의 전체 위반행위에 대해 시료 분석 등을 통해 방사선의 영향을 평가했고, 자체처분이나 배출관리기준 미만이었으며 환경에 미치는 방사선 영향은 거의 없거나 미미한 것을 확인했다. 아울러, KAERI가 외부로 무단 반출한 폐기물을 회수해 보관토록 조치했다.

지난달 28일 있었던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는 특별점검 결과에 대한 행정처분을 심의해, 용융시험시설의 3개월 업무정지, 과징금과 과태료 19억 8000여만 원 부과와 함께 책임자 5명에 대한 검찰 고발을 의결하였다. 이달 12일, 지자체 의원과 공무원,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이뤄진 `대전원자력안전협의회`에서는 특별점검 내용과 결과를 안건으로 올려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특별점검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점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방사성물질을 취급하는 KAERI 전문가 집단이 가지고 있는 원자력 안전규제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이다. 전문가 집단인 만큼 방사선에 대한 지식은 높지만, 원자력안전법령에서 규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는 등 규정준수 의무에 대한 인식 부족, 전체적으로는 안전문화 결여가 문제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물론 이외에도 기관 차원의 방사성폐기물 통합관리 시스템 부재 등 복합적 영향도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KAERI는 하나로원자로, 사용후핵연료처리시설, 가연성폐기물처리시설, 핵연료물질 사용시설, 방사성동위원소 및 방사선발생장치 사용시설 등 여러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원자력안전법에는 이 시설들에 대해 1년 또는 2년 주기로 정기검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KINS는 시설의 규모와 위험성에 따라 며칠에서 몇 주 동안 검사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시설은 주로 핵연료물질을 취급하는 곳으로, 상대적으로 방사선학적 리스크가 낮아서 차등적 규제접근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제한된 인력과 시간을 투입한 점이 있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일차적인 책임은 KAERI에게 있지만, 정기검사 등을 통해 위반활동을 적시에 적발하지 못한 KINS도 자성할 점이 있다. 한정된 규제자원을 핑계 삼지 말고,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도록 검사체계를 정비하고 적절한 규제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요한 것은 향후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이다. KINS는 유사한 위반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인력 보강, 현장 중심의 검사체계 개선, 현장 규제경험을 반영한 검사지침서·절차서 내실화 등 검사체계 개선안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다.

규제활동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안전문화 의식이 높아지지 않고, 이번처럼 고의적으로 누락이나 은폐를 한다면 이를 적발하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규제를 강화한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방사성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자나 연구자의 의식 변화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망양보뢰`(亡羊補牢)는 양을 잃었을지라도 우리를 손질하면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성어이다. 이번 사건이 잘못을 바로잡아 `망양보뢰`의 계기가 되도록 관계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며, KINS로서도 중심에 서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본다. 김인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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