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수집한다. 그것도 무척 열정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수집할 가치가 있는 것은 거의 수집하지 않으며, 누구라도 수집하고 싶어 할 만한 것은 단 하나도 수집하지 않는다."

버리고 비우면서 심플하게 살기를 표방하는 `미니멀 라이프`가 대세로 자리 잡은 요즘, 이런 흐름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잡동사니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극무용학과 교수인 저자 윌리엄 데이비스 킹은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을 법한 물건들만을 열성적으로 그러모아 거대한 컬렉션을 구축해왔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컬렉션을 보유하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온 그에게 `최소 투자 최대 이익`이니 `가격 대비 성능`이니 하는 것은 딴 세상 이야기다.

효율과 가치 추구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그는 "만약 수집가들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내가 레어 아이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통조림이나 생수병, 고양이 사료 등 온갖 종류의 라벨 1만 8000개, 시리얼 상자 1579개, 우편봉투 속지 패턴 800개, 병뚜껑 500개, 신용 사기 편지 141통, 치약 포장 상자 120개 등을 모아왔다고 이 책에서 소개한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간 아무 가치 없는 물건들을 모으고 보관해온 저자는 가정에서, 일에서 여러모로 혼란을 겪던 중년에 이르러 자기 자신을 새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수집에 강박적으로 몰두하게 됐는지, 수집을 통해 과연 어떤 의미를 얻으려 했는지 의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 애쓴다. 이 의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얻어내고자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과거 회상과 수집에 관한 고찰을 오가는 이 독특한 자전적 에세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기도 한 인간의 사소한 습관과 일상의 사물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지면서 잔잔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시도한, 별난 수집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정신분석, 수집에 관한 통찰은 강한 자의식, 기묘한 강박, 자기혐오가 깊이 배어 있음에도 재치와 유쾌함을 잃지 않고 있다. 수집가다운 집념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이 책을 집필한 저자는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는 사물일지라도 그것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면 무한한 의미를 지닐 수 있고, 수집이라는 행위는 결국엔 죽기 마련인 인간이라는 덧없는 존재가 죽음의 공포에 맞서는 하나의 수단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호창 기자

윌리엄 데이비스 키 지음/ 김갑연 옮김/ 책세상/ 364쪽/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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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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