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등록이 마감됐다. 15명 출마자 명단에 허경영 전 민주공화당 총재가 빠진 것을 의아해 하는 이들이 많다. 얼마 전까지만도 출마를 공언했기 때문이다. 후보자 등록 신청서를 내지 못한 이유는 피선거권 제한 때문이다. 허 전 총재는 2007년 대선 때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결혼을 약속했다고 주장하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2008년 대법원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허 전 총재는 2차례 대선에 출마하는 과정에서 갖은 기행으로 회자되고 수많은 어록을 만들어냈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다. 도둑이 많은 게 문제"라는 말도 그 중 하나다. 요즘 대선 후보자들이 TV토론회에 나와 말잔치를 벌인다. 말로 사람을 현혹하는 건 요긴한 도둑질 기술이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 선거판에서 무슨 말을 못하랴. 누가 도둑이 되지 않을지, 도둑을 요직에 앉히지 않을지는 말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장자의 거협(상자를 열다)편에 나오는 얘기가 있다. 노나라의 수천명 도둑의 우두머리인 도척에게 한 부하가 물었다. "도둑질에도 도가 있습니까." 도척은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탁월함, 먼저 들어가는 용기, 마지막에 나오는 의리, 성공할지 실패할지 미리 아는 지혜, 골고루 나눠 갖는 어짐. 이 다섯 가지 도를 갖춰야 큰 도둑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이런 얘기도 있다. 상자를 여는 도둑이 걱정돼 끈으로 묶거나 자물쇠를 채워두는 것을 세상은 `지혜`라 한다. 그러나 큰 도둑이 들게 되면 상자 통째로 들고 달아나는데 오직 끈이나 자물쇠가 튼튼하지 못할까만 걱정하니 지혜란 오히려 큰 도둑을 위해 재물을 모아 두는 것 아닌가?

허리띠 고리를 훔친 사람은 사형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사람은 제후가 된다.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만든 법과 정의까지 훔쳐버리는 셈이다. 공약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를 알려면 그 사람의 입을 보지 말고 걸어온 발자국을 봐야 한다.

얼치기 지식인과 사이비 성인들이 세상을 훔치는 큰 도둑을 위해 상자를 단단히 묶는 일을 하고 있는지 살피는 게 중요한 시기다.

취재2부 이용민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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