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 출간 이후 13년 만에 공지영 작가가 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2000년 이후 집필, 발표한 작품들 중 21세기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작과 신작 산문을 수록한 이번 작품집은 작가의 매력적인 문장들과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 등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끊임없이 장편소설을 집필하면서도 단편소설이 갖춰야 할 소설 미학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다고 평가받은 작가의 최근 작품 경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일찍 집을 떠나 서울로, 지방의 공장으로 떠돌다가 다시 고향땅에 돌아와서도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 순례가 다시 희망의 싹을 틔우는 `부활 무렵`, 죽음에 직면한 할머니를 둘러싸고 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또 다른 죽음의 행렬 속에서 경악하는 소녀의 독백을 담은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탈출의 희망을 버리고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집착마저 포기한 후에야 운명과 맞닥뜨린 번역가의 삶을 그린 `맨발로 글목을 돌다`등은 그동안 작가가 죄의 용서와 화해, 고통과 번민을 통한 인간의 성장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단편 5편과 짧은 산문 1편이 실렸다.

주제의식뿐 아니라 기법 또한 뚜렷하다. 작가는 소설의 전통적인 기법인 3인칭 시점을 채택해 독자들로 하여금 단번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거나, 작가 개인의 현실을 소설에 녹여냄으로써 독자들이 현실과 소설의 구분을 뛰어넘어 보다 다각적으로 읽게 만드는 메타적 소설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작가의 장편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이야기 전개방식이 채택된 작품들은 독자들이 주인공과 내적 교감을 이루도록 만들면서 작가가 실험하는 소설 기법을 더 깊이 경험하게 한다.

쌀쌀한 바람을 뚫고 나무마다 새눈이 싹트는 이때, "생의 어떤 시기이든 봄은 오게 마련이고 그렇게 봄이 오면 다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났다"는 `월춘 장구`의 주인공 `나`의 독백에서 새 봄이 왔다는 희망의 싹을 본다.강은선 기자

공지영 지음/ 해냄/ 272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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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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