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꿈에 그리던 첫 유럽여행으로 프랑스의 파리 몽마르뜨 언덕에서 지하철을 타려 내려가 언뜻 발을 멈추었다. 10평 남짓 조그만 바로 지하철 입구에 매료돼 안내판을 보는 척 하면서 한참 살폈다. 20세기 초를 풍미한 프랑스 건축가 `엑토르 기마르`가 설계한 작품이다. 특히 `METROPOLITAIN`이라고 쓰인 현판의 독특한 글씨와 아르누보 양식의 특징인 나무줄기처럼 뻗어 서로 엉킨 데로 주철제로 만든 지하철 입구의 우아한 모습에 매료됐다. 서양건축사를 배우던 시절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보던 건축물을 실제로 보니까 더욱 감동스럽고, 누가 알아챌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다 불투명 유리와 녹색 주철구조물이 유기적으로 흐르는 듯 얽힌 모습을 정신 없이 카메라에 담은 적이 있다.

몇 일후 런던에 갔을 때, 당시 신도시로 개발되고 있는 동부 템즈 강변의 `도크 랜드`의 지하철 입구를 보고 또 놀랬다. 길바닥에서 타원형으로 단순하지만 예쁘게 솟아오른 앙증스럽고 투명한 모습에 푹 빠진 것이다. 출입구를 디자인한 건축가는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던 `노만 포스터` 경(卿)으로 런던 밀레니엄 다리와 홍콩 국책은행인 HSBC 본사를 설계해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그는 1995년 같은 디자인으로 스페인의 북부도시 `빌바오`에도 지하철시스템 공모전에 당선돼 설치했다. 작은 부분까지도 소중히 여기면서 다듬어 놓는 작품에는 건축적인 디테일이 곳곳에 숨겨 있어 이용하기도 참 편리했다.

그 후 2006년 대전에도 지하에 도시철도가 개통됐다. 도심을 통과하는 역마다 특징 있는 모습을 갖추겠다고 다짐하면서 향토작가들에게 실내마감을 공모해 실내 벽화까지 설치했는데, 지금 보면 규모가 작아서 인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를 보면 당시 예산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데,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의 지붕은 당초부터 설계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다니는 일반 도로면에서 보면 돌출부분이 없이, `도시철도입구`라 쓴 사각형문설주에 화강석판 붙인 낮은 정원과 세련된 외등 몇 개 만 있었다. 그러다가 한 여름의 우기가 다가오니까 빗물이 안으로 뿌려 서둘러 지붕을 덥기 시작했다. 이렇듯 서둘러 출입구의 지붕을 설치하는 과정을 상상해보면 딱하다.

역마다 자체 발주해 지붕을 설치한 양, 대전 지하철역 입구 지붕의 형태는 역마다 다르다. 아마 인근 제작소에서 각자 알아서 시공한 마감이라서 그런지 우리 눈에 낯설다. 한마디로 건축적인 요소가 없이, 비가 올 때 물이 안 새는 기능만 살린 듯하다.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쉽게 해결한 공공건축물의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한다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 불과 얼마 전에 설치한 구조물 위에 착색유리를 씌워, 누에가 탈을 쓴 것 같은 지하철 입구의 지붕은 대전지역 건축문화의 한 단면을 민낯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유병우 ㈜씨엔유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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