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린다展

김인_범소유상 개시허망. acrylic on canvas.130x193. 2016
김인_범소유상 개시허망. acrylic on canvas.130x193. 2016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대전창작센터는 창작의 노동성과 수행성을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재조명하는 `그리고 그린다展`을 연다.

4월 4일부터 6월 25일까지 83일간 창작센터 전관에서 열린다. 권영성·김인·박혜경 등 대전 작가 3인이 참여하며 회화와 설치 등 총 30점을 선보인다.

창작센터 기획전 `그리고 그린다` 전은 노동성과 반복성,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주목했다. 대상을 반복해 그려서 캔버스를 꽉 채워 패턴처럼 보이게 하는 작업, 자기 작품을 잘라서 층층이 오려 붙여서 다른 작품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는 작업,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끊임없이 관찰해 시각화하는 작업 등 오랜 시간 노동과 반복의 결과물로서 집적된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가들은 무엇을, 왜 반복하는지, 그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반복적 행위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또한 그들이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반복은 동일한 요소나 대상을 단위로 해 2개 이상 배열하는 것이다. 단위의 되풀이는 통일된 조직체가 되어 정연한 질서의미를 낳고, 되풀이하는 연속감과 운동감은 리듬을 나타낸다. 이번 참여작가들은 주변 소재를 반복해 그리거나, 오리고 붙이면서 물성을 반복적으로 탐구하는 반복적인 수작업을 하고 있다. 일견 보기에는 비슷해 보여 `반복의 과잉`이 아닌가 싶은 형상들이지만, 자세히 보면 손으로 그리는 것인지라 모두 같지 않다.

김인 작품에서 오브제의 구도와 배열 크기의 변주를, 박혜경 작품의 균질해 보이는 화면 안에서 변화하는 선의 형태와 농담 그리고 선 사이 여백의 변화들, 권영성 작가의 지도에서 세부를 잘 들여다 보고 각각 다른 동네를 찾아보자. 작가들은 일상의 시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차이를 미시적이고 탁월한 감각으로 표현해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들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반복`이다. 관람객은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며 반복성을 가진 작품들에게서 `차이`를 발견하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반복은 또 의미를 만든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일회적일 수도 반복적일 수도 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이 생겨, 관찰·연구·표현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연결 고리를 확장시켜 관심 범위를 넓혀갈 수도 있다. 작가들이 여러 번 그리는 것,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러 번 관찰하고 그 대상에 대해 여러 번 사유하는 것, 그것은 작가들과 여러 번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작가는 대상과 반복적으로 만나고 소통해 대상의 본질적·존재적 의미를 통찰하고,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반복의 시간을 따라가며 사유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작가들도 수년간 집약적인 무수히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작업을 갈고 닦는, 흡사 수행과도 같은 창작행위를 보여준다.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것은 축복이기도 한 반면 끊임없이 유혹을 떨쳐내야 하는 고행의 길이다. 이러한 고행의 보상은 무엇일까. 고통스러운 수행 후에 나오는 작품이 `스스로 즐거울 때` 느끼는 희열의 가치가 그 보상일 것이다. 창작의 근본 동력이 쾌가 아니라면 창작과정의 고통을 상쇄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창조적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고된 노동과 수고를 감수하고, `스스로 즐기는` 경지에 이른 세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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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성_사거리와 도로의 관계그래프, 162.1x227.3cm, Acrylic on Canvas, 2015
권영성_사거리와 도로의 관계그래프, 162.1x227.3cm, Acrylic on Canvas, 2015

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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