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쯤부터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썰매개들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퍼어뱅크스에서 퍼먼까지 780km를 달리는 장거리 경기였는데 그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경기였다.

알래스카에서 금방 경기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새로운 흥행을 시작했는데 그 길목에는 얼어붙은 바다 호수 강들이 있었고 갈라진 그레바스의 틈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천진의 절벽과 계곡들도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장장 1주일 이상이 걸리는 경기의 길목에는 불곰과 이리들도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극한지역이기 때문에 늘 굶주리고 있는 그들은 경기에 참가한 썰매개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경기를 주최하는 측에서는 그들을 제거할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 썰매경기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경기였다.

경기에는 20조나 되는 썰매개 팀들이 참가했으나 완주하여 무사히 결승선에 도착한 썰매개들은 만수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이 갑자기 꺼지는 얼음구멍에 빠지거나 절벽에서 떨어졌고 갈색곰과 이리들이 희생이 되기도 했다.

물론 희생되는 것은 개뿐만이 아니라 그 개들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1938년 그 경기에 미국인 동물학자인 토마스 교수의 썰매개 팀도 참가하고 있었다.

토마스 교수는 페어뱅크스 산기슭에서 동물연구소를 차려 놓고 운영하고 있었는데 원래가 모험심이 강한 젊은 소장학자였다.

토마스 교수는 3년 전에도 그 경기에 참가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알래스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알래스카 사람들은 모르는 학자인 그가 이내 경기에서 탈락할 줄로 알고 있었으나 그의 썰매개들은 전 코스의 3분의 2까지를 선두로 달렸다.

동물학자인 토마스 교수는 썰매개들을 전문으로 사육하던 인디언과 에스키모의 썰매꾼들과 상의하여 그동안 우수한 썰매개들을 구입하여 훈련시켰던 것이었다.

그의 썰매팀은 그대로 갔으면 우승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토마스 교수는 거기서 경기를 포기했다. 개들이 너무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경기를 속행하면 개들이 위험했었다.

토마스 교수는 다른 썰매꾼들처럼 피를 토하고 있는 개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없었다.

토마스 교수는 그래서 다시는 썰매경기에 참가하지 않았으나 그의 썰매개 팀의 능력을 알고 있는 많은 썰매꾼들이 그에게 경기에 참가하도록 권고했다.

토마스 교수 자신도 그때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무리한 운영 때문에 채무가 불어나 연구소가 문을 닫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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