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긴 삶을 씹다가 지친 어금니는

사랑이 밥 먹여주느냐고

사랑니를 탓한다

한때는 삶의 전부가 사랑으로 도금된 세월이 있었다

밥에 섞인 돌마저 사랑의 힘으로 아드득 깨물던 어금니가

하나씩 흔들리는 지금

사랑의 기준은

쓸모 있음과 없음으로 계산된다

사랑은 아무도 볼 수 없고

보이기 위해 사랑을 하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내지 않고

삶을 이끄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으면서도

세월은 사랑을 맨 뒷자리로 밀친다

단 한 번

하얀 웃음을 보이지 못하고

음식을 씹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

아픈 사랑을 뽑으면서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조차 아득한 사랑니가

짝이 없으면서도

씹히지 않는 삶을 씹으려 분주했던 외로움을

비로소 느낀다 (372)

사랑은 누구에게나 그리 외로운 길인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 몸속 외진 곳. 우리 사랑 지키기 위해 헌신하던 그. 이제 그를 떠나보내며 시인은 씹히지 않는 삶을 씹으려 분주했을 그 외로움을 비로소 느낀다. 우리 몸 가운데 가장 단단했던 부분은 어디일까. 그렇던 이빨도 사랑이 떠나니 이렇듯 무참히 무너져 내리는구나. 한때는 돌도 씹어 먹고 쇳조각도 가차 없이 자르던 그 강한 이빨. 사랑하는 이를 위해라면 독약을 씹어도 절대 죽지 않던 열정이 그새 세월이 쌓이고 둔감해지는 찰라. 어느새 사랑이 밥 먹여주느냐고. 사랑이 밥을 먹여 주겠느냐 말하는 그 순간부터. 그건 가장 약한 몸의 일부로 흘러내리는구나. 부실한 건물이 스르르 무너져 앉듯이, 산사태로 비탈이 스르르 흘러내리듯 말이다.

사랑을 든든히 버텨주던 그도 이제 쓸모 있음과 없음으로 계산되는구나. 이제 이 세상엔 사랑이 더 필요한 사람과 사랑이 필요 없는 사람들로 구분되는 것인지. 소중하다며 언제라도 잊지 않겠다고 자신의 내부에 고이 간직했던 사랑. 그 사랑도 더 이상 밥을 씹을 힘을 잃은 뒤에는 사랑니 빼듯이 빼 버려야 하는 것인가. 아, 사랑니. 그 이름에 새겨진 시간의 싸늘한 그림자여, 고독이여.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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