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아동문학 강의를 하는 나는 강의 첫 시간 학생들에게 "판타지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지, 머글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 머글은 판타지에서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마법 능력이 없는 사람이기에 좋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이 마법사라고 생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 누구라도 이 질문에 바로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판타지에서 머글이 비하의 뜻으로 쓰이지만 현실세계는 어디까지나 머글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머글이 현실에 잘 적응하여 사는 데 비해 판타지 주인공들은 현실세계에서 도리어 왜소하고 힘없는 아웃사이더인 경우가 많다. 이들이 판타지의 주인공임을 깨닫는 순간은 바로 세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소외된 존재인지 느낄 때다. 현실에서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사는 사람이 새로운 세계를 간절히 꿈꾸기는 쉽지 않다.

판타지 주인공으로 선택 받았다고 갑자기 없던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마법도구가 필요한데, 마법도구는 뜻밖에도 주위에 있는 흔한 물건인 경우가 많다. 최고의 셰프가 되려면 주방에 있는 칼이, 최고의 작가가 되고 싶다면 책상에 있는 연필이 마법도구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겨우내 먼지가 쌓였던 자전거를 타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릴 지도 모르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산책길에 나설 때 우연히 판타지의 길을 찾을 수도 있다. 판타지의 길에서 주인공은 우여곡절을 겪고 때로는 죽음을 무릅쓰고 방해자와 싸우며 힘을 키워나간다. 반지의 제왕이 되는 길은 산을 오르는 일과 같아서 판타지 주인공의 삶도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판타지로 들어갈 때의 `머뭇거림`이다. 판타지세계는 현실세계와 물리적 법칙이 다르기에 당연히 입구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머뭇거리다 포기하면 우리는 여전히 머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다른 세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걷기 불가능해 보이는 바다 위로 한 발짝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알로호모라` 라는 문을 열 때 외치는 주문과 함께 일생일대의 주인공으로 변신할 지, 머글로 남을 지는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데, 머글로 남는다면 먼 훗날 조금은 아쉽지 않을까? 오세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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