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문화계의 블랙리스트 파문을 지켜보면서 문화의 기본적인 개념과 문화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유네스코에 의하면 최근 문화산업은 글로벌 경제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중동지역이 17.6%로 신장세가 가장 두드러지고 이어서 아프리카 13.9%, 남미 11.9%, 아시아 9.7% 순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배경에는 적은 자본투자로 사업추진이 가능하며 진입장벽이 낮고 여성을 포함한 사회취약계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에콰도르에서는 문화활동에 종사하는 인구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60%를 초과하여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실증적 연구조사를 통해 문화가 여성의 고용창출과 함께 양성 평등을 실현하고 인권을 신장하며, 청소년의 사회적 유대감과 기업가정신을 함양하는 데 있어서 매우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문화가 국민의 삶과 사회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많은 주장이 있지만, 문화가 개인의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힘을 갖고 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문화는 그 자체의 분석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만개한다"고 했다. 문화가 소리 없이 세상을 바꾸어 놓는 힘을 강조한 것이다.

문화와 발전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유네스코는 2015년 이후의 유엔개발의제를 다루면서 `문화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동력이자 조력자` 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문화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문화와 발전이 융합되면 ① 지속성 ② 포용성 ③ 형평성 ④ 다양성이 촉진되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혜택과 비화폐적 혜택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보다 효과적인 발전을 위한 문화적 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문화의 4개 키워드를 정립한 논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지속성은 문화가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MDG)를 지속적으로 달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문화가 유엔의 개발지원프로그램 중 70%를 차지하여 문화 없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포용성은 문화가 전쟁, 재난 등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으며, 혹시 발생하는 경우 갈등 극복을 위해 포용성을 갖추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형평성은 문화가 여성의 고용창출, 인권 신장을 통해 양성평등에 기여하는 등 성별·계층·세대별 격차와 위화감을 해소하는 비화폐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은 문화가 개인의 생활양식, 행동, 소비행태에 영향을 미치면서 개인과 개인사이, 그리고 문화 간 대화와 교류를 촉진하여 문화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보다 확산된다는 것이다.

유네스코의 이러한 문화에 대한 발전적 정의와 역할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블랙리스트처럼 문화예술단체와 예술인을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정부의 예산지원 여부를 결정하거나 차등을 두는 선진국은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블랙리스트 파문은 문화의 지속성, 포용성, 형평성, 다양성 측면에 배치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이 전화위복이 되어 우리 문화예술계가 한 단계 발전하는 중대한 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문화예술지원정책이 유네스코가 정립한 문화의 개념과 역할에 부응하도록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먼저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이 법적·제도적으로 문화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아울러 문화예술지원정책을 세부적으로 실행하는 전국의 광역·기초자치단체 문화재단이 유네스코의 문화기조에 따라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예술인을 형평성 있게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인병택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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