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숙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박은숙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며칠 전, 대전 원도심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두런두런 모이게 되었다. 어김없이 지역 예술가의 힘겨운 겨우살이 이야기가 안주로 올라왔고, 술잔이 몇 순배 돌고나니 위로를 건네듯 기타를 꺼내들고 노래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싱어송라이터 정진채였다. 진채는 대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진채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이다. 기타를 메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뒷모습은 영락없이 순박한 소년인데, 노래할 때면 포효하는 작은 거인으로 변하곤 한다.

그는 2001년 1집 앨범을 발표한 이후 최근 4집 앨범 `노래하는 꽃`을 발표하였다. 4집 앨범에는 주로 충청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의 시에 그가 직접 곡을 붙이고 노래한 것들이 담겨 있다. 지난해부터 지역 시인들과 함께 노래를 만드는 작업을 해온 결실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시인들의 시와 산문에 곡을 붙여 노래함으로써 낯선 시가 노래를 통해 친근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3집 앨범 `꽃피는 시`에서부터 시작된 시노래 작업은 그에게 시노래 가수라는 별칭과 더불어 시청자미디어 최우수 작품상 수상의 기쁨도 안겨주었다.

지난 가을 버섯산행 길에 진채에게 지역이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지역작가와 함께 곡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지역은 자신의 고향이고, 지역작가들의 글에 곡을 붙이게 된 것은 그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다 보니 편안하고 좋아서라는 단순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며 일상적으로 만나는 장소와 사람이 바로 지역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는 대전 중구 대흥동의 오래된 골방에서 진채와 한목소리로 4집 앨범 첫 번째 곡인 윤동주의 서시를 떼창하였다. 유명한 대중가요도 아니고, 오히려 비장한 마음으로 읊곤 하던 서시인데, 진채의 노래를 따라 편안하고 쉽게 흥얼거렸다. 노래가 가지고 있는 힘일까? 박석신의 가을꽃, 함순례의 배꽃, 나태주의 풀꽃까지 갑자기 구석 골방도 꽃밭이 되었다.

며칠 내내 출퇴근길에 진채의 노래를 듣고 있다. 어느 틈에 노래를 따라 제법 흥얼거리게 되었다. 꾸밈없는 진채의 목소리를 통해 지역 시인들이 나지막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대전 산내, 낭월동을 지나온 시노래 버스에 봄 햇살도 실려 오고 있다. 변방일 수밖에 없는 지역문학과 변방의 가수 진채가 만나서 들려주는 우리 대전의 이야기이다. 박은숙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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