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핵소 고지

네이버 핵소고지 스틸컷 갈무리
네이버 핵소고지 스틸컷 갈무리
신념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사람에 따라 가볍게 여기기도, 그 무엇보다 무겁게 여기기도 한다. 죽음의 경계에 놓인 신념이라면 어떤가. 대부분은 신념을 지키기보다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를 저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신념은 역사에 기억되고, 전설이 된다.

영화 `핵소 고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치열했던 일본 오키나와 핵소 고지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 실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총을 들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키며 전우 75명을 지켜낸 데스몬드 도스(앤드류 가필드) 의 이야기다.

그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친다. "제발…한 명만 더…." 비폭력주의자인 도스는 전쟁으로부터 조국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지 않아도 되는 의무병으로 육군에 자진입대한다. 과거의 경험과 종교적 신념이 결합돼 그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도 내려놓는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을 곱지 않다. 흔히 고문관으로 불리며 군대 필수 훈련인 총기 훈련마저 거부해 군과 동료들의 비난을 받는다. 도스는 혼자만의 외롭고 기나긴 싸움 끝에 결국 군사재판까지 받게 되고 신념을 굽히지 않아 무기없이 전쟁에 참여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군은 오키나와 전투에 도스를 보내도록 결정하고 총기 없이 의무병으로 활약한다. 이제부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진다. 전우들이 총을 들고 전장을 누빌 때 그는 홀로 남아 부상당한 목숨을 구하고, 후퇴 명령이 떨어져 모두가 퇴각했음에도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부상당한 전우들을 구한다. 이 과정에서 도스는 팔이 부러지고 다리에 수류탄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지만 100여 명의 부상자 중 75명의 생명을 구해내며 영웅이 된다.

실존 인물인 데스몬드 도스는 총을 들지 않은 군인 최초로 미국에서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명예의 훈장(Medal of Honor)`을 받는다. 명예의 훈장은 전투 중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용맹함을 보여준 군인이라고 판단될 때 수여하는 훈장이어서 도스에게는 더욱 의미가 깊다.

일찌감치 영화나 소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질 법한 스토리지만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다. 수십 년 동안 도스에게는 그의 이야기를 영화화 하자는 제안이 쏟아졌지만 이를 모두 거절한 것. 그는 삶의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유명해지고 싶지 않았고, 한 평생 조용히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후세에도 전해야 한다는 끈질긴 설득 끝에 87세의 나이로, 자신의 삶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 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 그를 스크린에서 직접 만나볼 수도 있다.

영화는 2017년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은 물론 편집상, 음향상, 음향효과상까지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뛰어난 작품성을 입증했다. 이중에서 편집상과 음향효과상을 차지하며 2관왕을 차지했다.

또 메가폰을 잡은 멜 깁슨 감독은 `아포칼립토`, `브레이브 하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자신만의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발돋움 했고, 시나리오를 읽은 후 10년 만에 메가폰을 잡기로 결심했다. 그는 도스의 굳은 신념과 용기를 섬세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했던 핵소 고지 전투를 리얼하면서도 서사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데스몬드 도스를 너무 부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도스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존경받을 만 하지만 작위적으로 신격화 되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또 군인의 사명감, 조국에 대한 헌신 등을 표현할 때 등장하는 웅장한 음악은 극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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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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