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성의 굵은 저음의 목소리에 매력을 느낀다. 얼굴을 가린 채 목소리로만 매력을 어필한다면 테너보다는 바리톤, 베이스의 음역을 갖은 남성이 유리하다. 남자는 여자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대구 아가씨의 `오빠야~`에 남자들이 환호하는 것일까? 아무튼 사람들의 말씨나 말투를 통해 그 사람의 감정도 읽을 수 있고 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에게도 그런 것들이 있다. 성품이 따뜻하고 온화한 사람은 음악이 너무 아름답고 따뜻하다. 재치 있고 활동적인 연주자는 역동적이고 화려한 음색을 보여준다. 조용하고 예민한 연주자에게는 아주 섬세한 표현이 느껴진다. 성격이나 성품이 고스란히 소리도 나오는 걸 보면 놀랍기도 하다.

십수 년 전 음악캠프 일을 맡아 진행하던 때이다. 각각 연습실에서는 레슨이 이뤄지고 순서에 따라 다음 학생들을 찾아 대기시키는 진행자의 목소리, 연습하는 소리가 뒤엉켜 정신이 없었다. 늘 그렇듯 학생들은 자신이 쓰던 의자를 여기저기 두고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의자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일로 하루를 마감했었다. 그날도 모두가 떠난 연습실에서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이 걸 매일 혼자 했어요?`라며 누군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 캠프의 이름이 걸려있던 연주자이고 외국유명대학의 교수였다. 그리고는 의자정리를 함께 해주시는 것이다. 몸들 바를 몰라 손사래를 쳐도 웃으며 묵묵히 함께해주셨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그 분의 연주가 따뜻하기도 하지만 그 분은 이미 대가로 알려진 연주자다.

공연 기획 일을 하다 보면 세계적인 스타부터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무대초년생들까지 많은 연주자들을 만나게 된다. 의자를 함께 정리해주는 대가의 아름다운 스토리는 흔치않다. 공연을 앞둔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상당히 예민해져 있고 가끔은 얼토당토않은 요구로 시험에 들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최고의 무대를 위한 것이기에 충분히 받아들여지고 나는 착한 사람 코스프레에 들어간다. 이 배려가 평소에도 이어졌다면 난 아마도 국제구호 활동가가 되어있을 것이다. 이런 날 보면 상대방에게 건네는 목소리의 온도는 마음에서 나오지만 또 마음먹기에 따라 조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건넨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순 없지만 그 온도에 따라 이율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은미 <대전시립교향악단 기획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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