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건물의 작은 한 켠에 개설한 은행 점포를 향하다 보면 복도에서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사진과 만난다. 낫자루를 왼손에 쥐고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고삐를 움켜 쥐고 내를 건너는 모습의 노인을 찍었는데 꼭 선친의 모습이다. 이 사진을 보면 하루의 피곤이 일시에 싹 가신다. 바지를 걷어 올린 것에서부터 소를 끌고 가는 폼이 선친 같기도 하거니와 뒤따라가는 암소의 모습도 그 옛날 우리집에서 기르던 소와 같게 보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소는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나 속으로 총명하고 영특하다고 기록돼 있다. 언젠가 진도에서 대전까지 팔려간 진돗개가 자기가 살던 진도까지 발바닥이 다 닳도록 달려 찾아왔다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단한 놈이라고 칭찬이 자자했었다. 또 술에 취해 쓰러진 주인이 산불에 휘말리는 걸 막기 위해 수백 번이나 몸에 물을 적셔 뒹굴어 주인을 살렸다는 `오수의 개`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주인은 이 개의 죽음을 슬퍼하며 개 무덤 앞에 지팡이를 꽂아 두었는데 이것이 뿌리를 내려 느티나무가 되었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우리집에서 오래도록 살다 건너 면(面)으로 팔려갔던 누렁이 암소도 통금 시각이 지난 후 먼 길까지 다시 찾아와 외양간 문을 두 발로 득득 긁어 우리를 놀라게 했던 일이 있다. 우리집까지 삼십여 리를 달려오느라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칠흑 같은 밤 그는 어떻게 저 살던 집까지 찾아왔는지 모른다. 귀소본능이 있어서 였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그를 보고 눈시울을 붉히며 낮에 소장수로부터 받았던 지폐 뭉치를 만지작거리셨고 우리들의 기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팔려가고 나서 다른 소가 바로 교체되지 않아 그 날 저녁을 우리집에서 지낸 그는 그 이튿날 아버지가 끓여준 콩이 잔뜩 든 여물인데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는 다시 주인의 손에 이끌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돌아간 후로는 영영 결별을 하고야 말았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치고 성새였던 도림에 소를 놓아 기른 데에서 유래하였다는 도림처사라는 이름의 소. 지축을 울리며 뚜벅뚜벅 바쁠 것 없이 황무지 일궈내고 식솔들에게 대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소가 아니던가. 문희봉 시인·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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