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논의가 권력 놀음으로 빠져드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제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여야 3당은 조기대선 전 개헌이 가능하도록 단일안을 마련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3당이 각개약진하다가 뜻밖의 합의를 도출한 건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호헌 문재인 대 개헌 빅텐트`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보자는 의중이다. 개헌 빅텐트 터 닦기에 나선 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와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어제 회동도 본질은 비슷하다.

개헌은 `87년 체제`의 종식을 고하는 일뿐만 아니라 앙시앵 레짐(구체제) 청산을 외쳐온 광장의 정신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시대적 요구다. 하지만 선거에 이용하려다 보니 권력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한계다.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자유한국당)나 `6년 단임 분권형 대통령제`(국민의당), 그리고 `4년 중임 이원집정부제` 등을 놓고 저울질이 한창인 바른정당이 하나같이 똑같다. 개헌안에서 지방분권이나 국민기본권과 관련해선 선언적 문구 이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화와 저성장화, 저출산·고령화 같은 온갖 변화가 두드러진 시대에 기존의 정부 체계로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음은 오래 전 드러났다.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했지만 중앙집권체제의 문제점은 거의 고쳐지지 않았다. 본격적인 개헌 공론화 속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과 재원을 재배분하고 중앙통제적인 지배-종속적 관계에서 대등-협력관계로 재편해 `협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방분권 주장이 거세지는 이유다.

하지만 중앙 정치무대의 지방분권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은 이제 무시 차원을 넘어섰다. 근거는 차고 넘친다. 지방일괄이양법 제정을 뭉개는 게 대표적이다. 이 법은 지난 2000년-2012년 지방이양이 결정됐으나 아직 완료되지 않은 사무들을 한꺼번에 넘겨줘 지방분권을 촉진하자는 게 핵심이다. 현실은 중앙부처의 권한 틀어쥐기와 국회의 상임위 소관주의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1999년 이양을 마무리 한 일본이나 프랑스(1985년)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라고 전례가 없는 게 아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2006년 16개 부처, 140개 법률을 개정해 1062건의 사무를 이양한 적이 있다.

주민 불편과 비효율을 더 두고 볼 때가 아니다. 새마을금고의 이용 대상은 생활권과 경제권이 동일한 지역주민인데 설립인가 등 사무를 행정자치부가 왜 가져야 하나? 민원성 업무의 신속처리를 위해 시·군·구로 이양하는 게 필요하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연구개발특구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토지 용도 같은 9개 사무를 내놓지 않는 것도 그렇다. 입주 기업의 경제활동이나 지역주민의 생활 안정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시·도지사가 관할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중앙에 남아 있는 사무는 현재 19개 부처, 101개 법률, 609개에 달한다.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는 출범 이후 지방이양일괄법 처리에 총력을 쏟아왔다. 필요성 논리를 대폭 보강했고, 일괄 이양에 따른 행·재정 보전방안 적합성 설득 논리를 보완했다. 또 지자체의 수용성과 실행력을 높였고, 국회 지방재정·분권특위와 밀도 있는 협의를 거쳤다. 결론은 소귀에 경 읽기다. 주민들의 폭넓은 공감대와 법적 근거(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 11조)까지 있음에도 법제화는 요원한 상황이다.

물론 지방분권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기존 헌법에 따라 제한돼 있는 지방자치를 확대하는 헌법 개정이 필수다. 현행 헌법 제8장의 제목을 `지방자치`에서 `지방분권`으로 바꾸고 제117조와 제118조 단 두 조항뿐인 내용을 확대해 지방자치단체의 분권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여야는 개헌을 정치도구화하지 않을 심산이라면 공론화에 앞서 지방이양일괄법부터 처리하는 진정성으로 지방분권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이것이야 말로 지방의 목소리요, 시대적 당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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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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